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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여고생때 느낀 운동의 맛, 지금 내 삶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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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 두 잇] [1] 여대생 농구 동아리 '파시온W'

운동 안하는 10대 여자 청소년 해마다 늘어 지난해 40% 넘어

고교때 농구 매력에 빠진 11명, 졸업 후에도 토요일마다 훈련

"레이업슛 처음 넣었을때 짜릿… 스트레스 풀고 공부도 더 잘돼"

운동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운동하는 여학생은 줄고 있다. 러닝크루와 함께 도심을 달리는 여성도, 과격한 운동을 배워보려는 여성도 많아지고, 서점엔 여성의 체력과 근육을 강조하는 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여학생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규칙적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국민은 2016년 29.5%에서 2019년 25.9%로 매년 감소한 반면, 10대 여성은 2016년 35.7%에서 지난해 43.4%로 해마다 늘어 처음 40%를 넘어섰다(문화체육관광부 '국민생활체육조사보고서'). 또래 남학생들(28.8%)의 1.5배 이상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건강은 물론,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태도와 습관, 가치관을 몸에 익힐 기회를 우리 여자 청소년들은 놓치고 있다. 5회에 걸쳐 생활 체육 활동을 통한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 현장을 살펴본다.

"나이키 농구화 새로 나온 거 봤어?" "난 스테픈 커리 팬이니까 언더아머 신고 농구 할 거야."

20대 여대생의 대화라고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체육관에서 들려왔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상암고등학교 체육관에 여자 농구 동아리 '파시온W' 회원 11명이 모였다. 하이힐 대신 농구화를 신고, 원피스 대신 헐렁한 체육복 차림으로 매주 토요일 함께 농구를 한다.

조선일보

파시온W 회원들은 하이힐보다 운동화를, 원피스보다 헐렁한 체육복을 사랑한다. 15일 상암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만난 이들은 “농구를 하면서 팀플레이의 재미를 깨쳤다”며 “이렇게 재미있는 운동을 고등학교 때 처음 알게 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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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은 아마추어 열혈 농구인이자 체육교사인 이윤희(42·상암고)씨의 제자다. 이씨는 2011년부터 경기여고, 등촌고, 상암고 등 부임하는 학교마다 여학생 농구 동아리를 만들어 농구의 매력을 알려줬다. 고교 시절 운동에 푹 빠진 여학생들은 그 매력을 잊지 못해 졸업 후 다시 뭉쳐 농구를 계속 해왔다. 이씨도 매주 토요일 훈련에 참여해 기술 조언을 하며 '애프터 서비스'한다.

"여고 운동장은 아무도 쓰지 않아 잡초가 골프장처럼 무성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겠다고 하니 '발목이라도 다쳐 공부에 지장 생기면 학부모 난리 난다'고 동료 교사들이 걱정했죠. 막상 시작하니까 아이들이 스트레스 풀고 체력도 좋아져 공부도 더 즐겁게 했는데…."

◇이것이 농구의 맛

연습 경기에 돌입하자 농구화 밑창이 끽끽대는 체육관 바닥 마찰음을 배경 삼아 고성이 난무했다. "거기서 패스하고 스크린 걸어!" "방금 슛 나이스!" 10분간 1쿼터를 치르고 땀에 흠뻑 젖은 이들은 "이 맛에 농구 한다"고 예찬론을 펼쳤다.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었고요. 다이어트 걱정 안 해요. 등이 곧게 펴져 키도 2~3㎝ 컸어요!"

소심한 성격이었다는 신보경(23)씨는 고2 때 친구 권유로 농구를 시작했다. "땀 흘리고 부딪치면서 서로 어떤 플레이를 원하는지 말해야 하는 운동을 하다 보니 활발하게 목소리 내는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대학에 가서는 ROTC에 선발됐다. 농구로 다진 체력 덕분에 기초군사훈련도 수월했다고 한다.

정다윤(19)씨는 "키가 156㎝로 작은 편이지만 속공과 돌파 연습을 열심히 해서 키 큰 상대를 제치고 골을 넣었을 때 쾌감을 느낀다"며 "세상엔 안 될 일 없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고 했다. 이나은(24)씨는 "혼자 멋진 슛을 쏘는 것보다 팀원 5명이 공을 주고받는 플레이를 해서 슛에 성공했을 때 성취감이 훨씬 크다"고 했다.

◇학창 시절 운동 경험이 평생의 힘

김빛나(24)씨는 이윤희 교사가 등촌고에서 근무하던 시절 "농구 동아리를 만들어 전국 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며 이씨를 찾아갔다. 이씨가 같은 학교 남학생 농구팀을 이끌며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남학생들이 부러웠다고 한다. 김씨는 "레이업슛에 처음 성공했을 때 기쁨이 지금도 생생해요. 엄두도 못 내던 일을 연습으로 해냈다는 만족감이 정말 컸어요"라고 했다.

초등학교 방과 후 농구 강사로 활동하는 그는 "이윤희 선생님은 저희가 100개를 못해도 하나만 잘하면 엄청난 칭찬으로 동기를 부여해주셨거든요. 농구의 힘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라고 했다. 이씨가 덧붙였다. "규칙을 따르며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결과에 승복하는 삶의 태도를 스포츠는 가르쳐주죠. 운동에 몰입하며 땀 흘리고 머리 헝클어진 여성이 멋지잖아요."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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