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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아버지는 농구 대통령, 아들은 농구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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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농구로 KT 7연승 이끈 가드

도움은 외국인 포함해 전체 1위

승부욕과 근성은 아버지 빼닮아

부자 MVP 거론하자 “섣부른 일”

중앙일보

프로농구 국내 선수 득점 1위 허훈을 앞세운 KT가 7연승을 달렸다. [사진 부산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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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2017~18시즌)에 11연패 당한 적이 있는데. 7연승은 프로 와서 처음이네요.”

프로농구 부산 KT 가드 허훈(24·키 1m80㎝)을 15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연승을 자랑하며 해맑게 웃었다. KT는 14일 창원 LG를 꺾고 3위(13승9패)에 올랐다. 7연승은 2010년 10월 이후 9년 2개월 만이다.

KT의 연승에 앞장선 건 ‘농구 대통령’ 허재(54) 전 한국 농구대표팀 감독 차남 허훈이다. 프로 3년 차인 허훈은 이번 시즌 평균 득점 16.5점으로 국내 선수 중 1위다. 외국인 선수를 합쳐도 6위다. 어시스트는 경기당 7.36개로, 외국인 선수를 포함해 전체 1위다.

최근 화살을 과녁 중앙에 꽂듯 3점슛을 정확히 꽂는 농구를 ‘양궁 농구’라 부른다. 허훈은 ‘양궁 농구’의 선봉장이다. 지난달 20일 원주 DB 전에서 3점슛 9개를 연속으로 성공했다. 천하의 허재도 3점슛 연속 성공기록은 7개다. ‘허훈 3점슛 쇼’ 동영상은 조회 수가 17만회에 육박한다. 지난달에는 2경기 연속으로 30점 이상을 넣었다. 3일 삼성전에선 어시스트를 13개나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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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과 허훈.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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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이제 허훈을 “허재 아들”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KBL의 새로운 스타”, “용병급 단신 선수”라고 부른다. 또 “부자 최우수선수(MVP) 가즈아~”라고 응원한다. 허재는 기아 선수였던 19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손가락은 부러지고 눈 옆이 찢어졌는데도 투혼을 발휘했다. 7차전 끝의 준우승이었지만, MVP는 허재에게 돌아갔다. 그때 다친 허재의 왼쪽 새끼손가락은 지금도 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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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챔피언결정전에서 투혼을 펼친 허재. [중앙포토]



허훈은 “(그 경기 영상을) 유튜브로 봤다. 아버지는 승부욕과 근성이 정말 강해 보인다. 어릴 때 아파서 ‘피로골절 같다’고 하면, 아버지는 ‘그런 걸 가지고 쉬냐’고 농담하실 정도였다. 사실 나도 아버지 근성을 물려받은 거 같다”며 “나도 같은 상황이라면 당연히 뛸 거다. 챔프전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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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 허훈과 어머니 이미수씨.



어머니 이미수(53)씨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훈이가 고교(용산고) 시절 대학팀과 연습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졌다. 수술도 안 하고 며칠 쉬다가 대학팀과 연습경기를 했는데 또 부러졌다”며 “또 한 번은 협회장기 때 볼거리(유행성이하선염)로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그런데 주사만 맞고 뛰었는데 우승하고 MVP를 받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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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경기에 시투하러 온 허재(오른쪽)의 모습. 허훈은 허재의 차남이다. [사진 프로농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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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은 요즘 아버지를 도통 볼 수가 없다. 허훈은 “요즘 아빠가 전화 통화도 잘 안 될 만큼 바쁘다”고 전했다. 허재는 요즘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다. 허훈은 “술 드시는 것보다 차라리 예능 출연으로 바쁜 게 낫다”며 웃었다.

아버지를 가장 최근에 본건 지난달 22일이다. 그날 허재가 KT 홈 경기에서 시투를 했는데 3개 모두 실패했다. 허훈도 그날 6득점에 그쳤다. 허재는 경기 후 “다음에는 관중석 위에 숨어서 보겠다”고 했고, 허훈도 한발 더 나아가 “그냥 TV로 보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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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훈은 9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에 출전했다. 세계적인 팀들을 상대한 뒤 농구에 눈을 떴다. 허훈은 “아버지 생각하며 슛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허재는 지난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이었다. 자신의 두 아들인 허웅(26·원주 DB)과 허훈을 뽑았는데, 한국은 동메달에 그쳤다. 허재는 ‘혈연농구’ 논란 속에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신의 실력으로 아버지의 명예를 되살리겠다는 아들의 마음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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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주인공인 오리온 꼬북칩 캐릭터를 닮았다고 해서 허훈의 별명이 꼬북칩이다. [사진 부산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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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가 주인공인 오리온 ‘꼬북칩’ 캐릭터를 닮았다고 해서 허훈의 별명이 꼬북칩이다. 또 그는 여성 팬에게 인기가 높다. 허훈은 “만약 오리온에서 뛰었으면 광고 하나 찍는 건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허훈은 다음 달 올스타전을 앞두고 팬 투표에서 중간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의 형인 허웅이 2016, 17년 1위다. 허훈은 “형이 전에 ‘넌 평생 팬 투표 1위를 못할 것’이라고 놀렸다. 이번에 꼭 1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부자 MVP 가능성’에 관해 묻자 허훈은 “부자가 MVP를 받은 적이 있냐”고 되물은 뒤, “벌써 (말하는 건) 섣부른 일”이라고 했다. 이어 “아빠가 농구 대통령이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보좌관이나 비서 정도”라며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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