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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박항서의 베트남

'병아리 보호하는 어미닭처럼...' 베트남 또 뒤흔든 박항서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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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베트남 U-22 축구대표팀을 60년 만에 첫 SEA 게임 우승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이 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사진=AFPBBNewsSEA 게임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일궈낸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와 금성홍기를 함께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AFPBBNews베트남이 사상 처음으로 SEA 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을 차지하자 베트남 국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로 몰려나와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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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박항서(60) 감독은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을 당하는 순간 선수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관중석에 올라간 뒤에도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열정적으로 손짓을 하면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경기장 분위기는 극도로 과열됐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대표팀은 10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리살 기념 경기장에서 열린 동남아시안(SEA) 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2골을 책임진 ‘유럽파’ 도안반하우(헤렌벤)의 활약에 힘입어 인도네시아를 3-0으로 완파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SEA 게임 축구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1959년 첫 대회 때 월남(South Vietnam)이 우승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 베트남 국민들은 당시 월남을 자신들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베트남이 통일을 이룬 뒤 첫 우승이라는 점에서 더 열광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11월 베트남축구협회와 재계약을 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을 SEA 게임 금메달로 이끌면서 다시 한번 지도력을 증명했다. 지난해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아시안게임 4강·스즈키컵 우승에 이어 또다시 ‘박항서 매직 스토리’에 한 페이지를 추가했다.

열정적으로 팀을 지휘하던 박항서 감독은 2-0으로 리드한 후반 32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았다. 베트남 미드필더 트롱호앙이 몸싸움 도중 쓰러졌는데도 주심은 경기를 그대로 진행했다. 박항서 감독이 격렬히 항의하자 주심은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항서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관중석으로 이동했다. 박항서 감독 주변에 있던 인도네시아 팬들은 손가락 욕을 날리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대회 관계자와 보안요원들이 박항서 감독 주위에 배치됐다.

박항서 감독은 관중석에서 선수들에게 ‘집중하라’는 제스처를 이어갔다. 마치 벤치에서 지도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베트남 언론은 “박항서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며 “마치 병아리를 보호하는 어마닭처럼 선수들을 보호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이 우승을 확정짓자 박항서 감독은 그제서야 그라운드로 다시 내려왔다. 선수 한 명 한 명을 따뜻하게 안아줬고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에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베트남 선수들은 박항서 감독을 헹가래치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베트남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그라운드를 돌기도 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흔들며 팬들과 함께 우승 세리머니를 즐겼다.

박항서 감독은 경기 중 퇴장을 당했기 때문에 우승 공식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우승 소감을 전했다.

그는 “60년 만에 (베트남의 우승) 한을 풀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며 “이 순간 매우 기쁘고 이 기쁨을 즐거워하는 모든 분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항서 감독 대신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영진 수석코치는 “베트남 국민을 기쁘게 해준 것 자체가 선수들이 대단한 일을 한 것 같다”며 “베트남 국민의 응원에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진 수석코치는 “베트남 대표팀과 자기 자신을 믿고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자고 주문했는데 선수들이 행동으로 보여줬다”며 “오늘의 우승이 베트남 대표팀과 선수 개인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다시 한번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전국 곳곳에서 거리응원을 펼친 베트남 국민들은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각종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면서 베트남 국기를 흔들었다.태극기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베트남 보딕(우승)’이라는 외침이 끊이지 않았고 폭죽이 계속 터졌다. 지난해 U-23 아시안컵 준우승, 스즈키컵 우승 등에서 펼쳐졌던 축제 분위기가 재현됐다.

베트남 언론들도 우승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거의 모든 조간신문 1면이 ‘박항서 매직’으로 도배됐다. 일간 ‘베트남뉴스’는 “수백만 베트남 축구 팬들의 꿈이 60년 만에 이뤄졌다”며 “결승전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온 국민이 황홀감에 빠졌고, 팬들은 자축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졌다”고 전했다.

‘VN익스프레스’는 “베트남이 오랫동안 기다린 SEA 게임 금메달을 획득하자 축구 팬들이 밤늦게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면서 열광했다”고 분위기를 소개했다.

베트남 정부는 박항서 감독과 대표팀의 귀국길을 위해 특별기를 제공했다. 박항서 감독과 선수단은 귀국 직후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축하를 받았다. 베트남 현지언론에 따르면 베트남축구협회는 우승 포상금으로 30억동(약 1억5000만원)을 내놨다. 응우옌 응옥 티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대표팀에 포상금 10억동(약 5000만원)을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항서 감독은 SEA 게임 금메달 이후에도 쉴 틈이 없다. 오는 14일 베트남 성인 축구대표팀과 함께 한국을 찾는 박항서 감독은 경남 통영에서 동계 전지훈련을 가질 예정이다.

박항서 감독은 내년 1월 태국에서 열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 예선에서 베트남 역사상 첫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을 노린다. 현재 진행 중인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조 1위를 달리고 있다. ‘박항서 매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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