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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심폐소생한 씨름…서바이벌 예능 프로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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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의 귀환…유입된 젊은 팬, 옛것 아닌 ‘새것’으로 소비

경향신문

대한씨름협회가 제작한 홍보 영상 ‘나는 씨름 선수다’에 출연한 박정우 선수(의성군청·위 사진)와 허선행 선수(송곡고). 씨름이 유튜브를 통해 젊은층의 인기를 끌면서 씨름을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도 방송을 앞두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유튜브 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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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계의 아이돌’ 황찬섭(연수구청)과 손희찬(정읍시청)이 격돌한 지난 8일. 제100회 전국체전 씨름 경장급(75㎏ 이하) 준준결승 경기가 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택(SETEC)에는 젊은 여성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관중석 풍경도 이전과 달랐다. ‘빛찬섭’ ‘찬섭아, 꽃가마길만 걷자’ 등 손팻말은 물론 인기 아이돌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대포 카메라까지 등장했다.

이날 경기는 손희찬의 승리로 끝났지만, 팬들의 ‘덕질’(좋아하는 대상과 관련된 것들을 찾아보고 모으는 일)은 온라인 세상에서 계속됐다. 유튜브엔 두 선수의 팬들이 올린 ‘직캠’(팬이 직접 찍은 영상)과 방송사가 올린 영상이 경쟁하듯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많게는 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들 영상엔 재기발랄한 댓글이 넘쳤다. “이 좋은 걸 어른들만 봤다니” “상사병의 ‘사’자가 ‘모래 사’였구나” 등 젊은 시청자들은 씨름의 재발견에 대한 저마다의 소회를 밝히며 열광했다.

씨름은 1983년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시작으로 이만기, 강호동 등 대형스타를 낳으며 1980년대 시청률 60% 넘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화려한 뒤집기보다는 승률에 유리한 버티기가 대세 기술이 되면서 거구급 선수들이 대거 유입됐고, 경기에 지루함을 느낀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프로팀들이 해체되면서 2000년 이후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일부 노년층만 즐기는, 비인기 종목이라는 꼬리표가 씨름에 따라붙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작년 8월 학산배 결승 영상

뒤늦게 소개되며 인기 끌어

‘아이돌 외모·체격’에 열광


그랬던 씨름이 부흥의 불씨를 댕기게 된 데는 유튜브가 큰 몫을 했다. 지난해 8월 유튜브 채널 ‘KBSN’이 게시한 ‘제15회 학산배 전국장사 씨름대회 단체전 결승 영상’이 뒤늦게 유튜브 추천 동영상으로 뜬 게 계기가 됐다. 댓글을 빌려 표현하자면 “아이돌 못지않은 외모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황찬섭(당시 경남대), 김원진(울산대) 두 선수의 격돌이 젊은 세대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해당 경기 영상은 21일 조회수 203만을 넘겼으며, 1만5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상태다. 유튜브를 보고 씨름 팬이 됐다는 김모씨(28)는 “처음엔 황찬섭 선수가 잘생겨서 경기 영상을 찾아봤다”며 “보다보니 경기 룰도 익숙해졌고, 이제는 씨름 자체에 흥미를 느껴 영상을 보고 있다”고 했다.

씨름계에선 그간 노력이 유튜브를 타고 빛을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한씨름협회는 빠르고 화려한 경기를 부활시키기 위해 지난해 초 규정들을 개정했다. 최고 체중을 150㎏에서 140㎏으로 낮추고, 각 체급도 5~10㎏ 정도 하향시켰다. 인기 체급이 거구들 경기인 백두급(140㎏ 이하), 한라급(105㎏ 이하)에서 금강급(90㎏ 이하), 태백급(80㎏ 이하)으로 옮겨가면서 선수들 체형도 탄탄한 근육질로 변화했다. 씨름계의 자체 변화,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 새로운 것에 대한 젊은층의 욕구 등이 적절히 맞물리며 씨름이 옛것이 아닌 ‘새것’으로 탈바꿈돼 소비되기 시작했다.

KBS, 기술 씨름 강자 뽑는

‘씨름의 희열’ 내달 말 방송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사도 재빨리 씨름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 제작에 나섰다. KBS 2TV는 씨름 선수들이 출연하는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태백에서 금강까지 씨름의 희열>(가제)을 11월 말 방송할 예정이다. <씨름의 희열>은 국내 최정상급 씨름 선수들이 모여 기술 씨름의 최강자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황찬섭, 손희찬 외에도 지난 추석장사 씨름대회에서 기술씨름 진수를 선보이며 경기 영상 100만 뷰를 돌파한 금강장사 14번의 주인공 임태혁(수원시청), 대학부의 패기로 올 시즌 전관왕에 오른 노범수(울산대) 등 전국 각지에서 활약 중인 16인의 선수가 출연을 확정했다.

1990년 3월 이만기와 강호동이 맞붙은 ‘세기의 대결’ 이후 29년이 흘렀다. 제2 전성기를 목전에 둔 씨름계는 희망에 들뜬 모양이다. 유튜브 공식 채널을 개설한 대한씨름협회는 인기 선수들을 앞세운 홍보영상 ‘나는 씨름선수다’를 선보이는 등 씨름 부흥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층에서 복고 콘텐츠가 유행하는 와중에 씨름도 복고 콘텐츠 중 하나로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며 “지루하다는 씨름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날렵한 선수들이 속도감 있는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함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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