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신인왕 임성재 “호텔 떠돌이 생활 익숙…빨래도 척척”

NYT가 ‘방랑자의 리더’라 칭한 임성 …부모가 전하는 ‘미국 유랑기’

우리는 한팀 임성재가 지난 16일 제주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PGA 투어 ‘더 CJ컵’ 기자회견에서 PGA 신인상 트로피를 들고 부모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귀포 | 연합뉴스

초등 2학년 때부터 아들 그림자로

1000㎞까지는 차로 직접 달려가

가장 신경쓰는 건 먹을거리 준비

한국식당 없으면 마트서 장 봐

올 시즌도 투어챔피언십 나가길

“한 번은 호텔에서 고기를 굽는데 화재 경보벨이 울리더라고요. 프런트에서 무슨 일이냐고 전화가 오는데 진땀이 났어요.”

2018~2019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신인왕 임성재(21)의 아버지 임지택씨(54)와 어머니 김미씨(52)는 ‘집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대회가 열리는 곳의 호텔이 그때그때 이들의 집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는 임성재의 지난 1년을 소개하며 ‘PGA 투어 신인의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달고 “배가본드(방랑자)의 리더”라고 표현했다.

PGA 투어 ‘더 CJ컵’이 열리고 있는 제주 서귀포시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지난 16일 임지택·김미씨를 만나 미국 투어생활에 대해 얘기를 들었다. 2018년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현 콘페리 투어)와 2018~2019시즌 PGA 투어까지 벌써 2년 동안 미국에서 호텔 생활을 했다.

“한국에서도 많이 했어요. 육지에 나가면 호텔에서 먹고 자고 해야 하잖아요.” 두 사람은 ‘떠돌이 생활’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듯 얘기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아들을 따라 호텔에서 생활하는 일이 몸에 뱄다고 한다.

미국에 집은 없다. 일요일에 대회가 끝나면 다음 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바로 이동한다. 벌써 2년 동안 해온 일이다. 1000㎞ 정도까지는 직접 차를 운전해 이동했다고 한다.

아들이 골프선수라 골프채도 있고, 각자의 옷가지도 있어 짐이 많으므로 짐에 까다로운 비행기보다 차로 이동하는 게 편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동거리가 길지 않은 곳은 몇 시간 만에 가지만, 먼 곳은 중간에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다시 이동했다. 물론 1000㎞ 이상 되는 곳은 비행기를 타고 갔다. 다행히 PGA 투어에 오른 뒤에는 주최 측에서 차를 빌려줘 훨씬 편하다. 2부 투어에서 뛸 때는 모두 본인이 준비해야 했다.

대회가 시작돼 아들이 경기하고 있을 때 부모는 다음 대회에 대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였다. 임성재는 삼겹살 구워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부모는 다음 대회가 열리는 곳의 숙소는 어디에 있고, 주변에 음식점은 있는지를 확인했다. 한국음식점이 주변에 있으면 최고이지만, 마땅한 식당이 없는 것 같으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식당 검색은 인터넷에 의존했다. 괜찮은 한국식당이 없으면 입맛이 비슷한 일본식당을 찾았다. 그래도 다음 갈 곳에서 마땅한 음식점을 못 찾으면 당시 있는 곳의 한국마트에서 미리 장을 봐서 갔다. 포장된 삼계탕 등 전자레인지로 익혀서 먹을 수 있는 즉석음식이 주된 쇼핑 목록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고기를 사서 구워 먹거나 찌개를 만들어서 먹었다. 콘도형 호텔에서 고기를 굽다가 화재경보가 울린 적도 있다. 취사도구가 비치돼 있는 곳이었지만 경보기가 예민하게 반응한 모양이다.

빨래도 해야 한다. 다행히 미국은 호텔에 코인세탁기가 잘 마련돼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한국으로 말하면 빨래방이다. 여름에는 거의 매일 빨래를 했고, 어떤 때는 2~3일에 한 번씩 모아서 했다. 호텔은 PGA 투어 측에서 지정한 5~6개의 공식 호텔 가운데 가격이 중간 이하인 것으로 잡았다. 방 2개에 아들 침대만 크면 된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메리어트 계열과 힐튼 계열 호텔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가성비가 좋은 것 같아서다.

‘더 CJ컵’이 끝나면 다음주 일본, 그다음주 중국 대회를 치른 뒤 한국으로 돌아올 이들은 내년 초 미국으로 떠난다.

아버지 임지택씨는 “우승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투어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랭킹 30위, 40위를 목표로 삼고 열심히 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우승도 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지난 시즌처럼 2019~2020시즌에도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에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미씨는 “아들은 몸이 재산이니 고장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한 해 한 해 잘 넘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주 | 김석 선임기자 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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