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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말 많고 탈 많았던 ‘황당한 北 원정’ 결국 승부 못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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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亞지역 2차 H조 예선 / 韓, 北과 동률·골득실 앞서 1위 / 손흥민 등 정예 출전에도 무득점 / 벤투감독 “원하는 결과 못 얻어” / 北, 전력 고려 관중 입장 막은 듯 / 경기 DVD 영상 남측에 전달 약속 / 이르면 17일 경기장면 녹화 중계

세계일보

지난 7월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추첨에서 한국과 북한이 함께 H조로 묶이면서 29년 만의 평양원정 A매치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반드시 승부를 가려야 하는 월드컵 예선의 특성상 친선경기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겠지만 많은 관중들의 환호속에 서로 최선을 다한 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상했다.

그러나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는 이 같은 장면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날 경기에서 양 팀은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다. 한국은 손흥민(27·토트넘), 황의조(27·보르도) 등 정예멤버를 총출동시켰지만 90분 동안 끝내 북한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2승1무(승점 7·골득실+10)로 북한(승점 7·골득실+3)에 골득실에 앞서 조 1위 자리를 유지했지만 아쉬움이 컸다. 파울루 벤투 감독도 경기 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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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는 낯선 환경에 더해 북한의 ‘자발적 무관중 경기’라는 놀라운 결정이 선수들을 당황케 했고 이는 고스란히 경기력으로 연결됐다. 이번 경기에 앞서 북한 당국은 한국 선수단(선수 25명·스태프 30명)의 입국만 허용하고 붉은악마와 취재진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구나 생중계마저 무산돼 팬들은 물론 취재진조차 ‘깜깜이 문자중계’로 경기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기관련한 정보는 키르기스스탄인 경기감독관이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보내온 단편적인 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런데 경기를 30여분 앞두고 “김일성 경기장에 관중이 아무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경기장에는 외신 기자들도 전무한 상태”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이 경기는 관중과 남한 취재진, 외신 등이 완전히 배제된 채 남북한 선수단과 일부 북한 기자들만 참관한 채 킥오프됐다. ‘깜깜이’를 넘어 사실상 완전한 정보 통제 상태에서 경기가 진행된 셈이다. 2023년 여자월드컵의 남북한 공동개최를 제안했던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전세기편으로 평양을 찾아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를 직접 참관했지만 VIP 앞에서도 과감하게 무관중 경기를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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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남북전에서 양 팀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AFC 제공


전날 양 팀 매니저와 경기 감독관, 안전담당관 등이 참석한 회의 때 예상 관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북한 측은 “4만명 정도 들어올 것 같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6만원에 달하는 경기 티켓이 이미 동났고, 암표까지 나돌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기도 했다. 따라서 무관중 결정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경기가 임박해서 방침이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AFC 관계자도 “(북한의 무관중 경기는) 의외다. 전혀 조율된 바 없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홈경기의 입장권 판매 등 마케팅권리는 주최국 축구협회에서 가지고 있어 AFC가 문제 삼을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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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왼쪽)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북한과의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북한이 이번 남북전 경기 승패를 지나치게 의식해 이런 일련의 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객관적 전력상 패배 가능성이 크기에 경기 취재를 제한하고, 관중들의 입장까지 막았다는 것. 반면 2년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한국 여자축구대표팀과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의 여자아시안컵 예선은 취재진의 방북도 허용했고, 경기도 5만여명의 관중들이 들어찬 가운데 펼쳐졌다. 북한은 20일 평양에서 개막하는 아시아 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에는 남측 취재진 2명을 포함해 선수단 등 70여명을 초청하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아시아역도연맹을 통해 (방북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북측으로부터 남측 선수단 등에 대한 초청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역도 역시 북한이 한국에 비해 강세라는 점이 고려된 결정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북한이 경기 영상 DVD를 우리 측 대표단 출발 전 주겠다고 약속해 이르면 17일쯤엔 경기 장면을 녹화 중계 형식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이날 경기를 마친 대표팀은 평양 고려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뒤 16일 오후 5시20분쯤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17일 0시45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서필웅·조병욱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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