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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생생확대경]한국 체육 개혁, 체육특기자 제도부터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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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축구 국가대표 출신의 정종선(53) 전 한국고등학교축구연맹 회장이 최근 축구계에서 퇴출됐다. 그는 고등학교 감독 재임 시절 학부모들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학부모를 성폭행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중이다.

정종선 전 회장은 과거 감독 시절에도 횡령 등 여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도자로 돌아왔다. 오히려 ‘대학 진학을 잘 시킨다’는 학부모들의 입소문 속에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고등학교 축구 전체를 관리하는 수장 자리까지 올랐다. 비정상적인 체육특기자 입시제도가 낳은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엘리트 체육의 가장 큰 문제를 ‘성적지상주의’라고 한다. 성적지상주의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운동만 잘하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한 체육특기자 제도다. 2019학년도 주요 대학 체육 특기자 입시 요강에는 여전히 전국대회 8강이나 4강 이상의 운동 실적이 절대 비중을 차지한다.

학생 선수가 체육특기자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 숫자 이상의 경기에 나서야 한다. 경기에 출전하려면 지도자 눈에 들어야 한다. 지도자가 출전시키지 않으면 선수는 실력이 좋아도 경기에 뛸 수 없다. 학부모들과 지도자 간의 결탁과 뒷거래가 암암리에 이뤄질 수밖에 없다.

체육특기자 제도는 1972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국위 선양 및 국민 통합을 이유로 엘리트 스포츠 집중 육성에 나섰다.

운동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각 중·고등학교는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앞다퉈 운동부를 만들었다. 학업을 뒤로 하고 운동에 올인한 엘리트 선수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체육특기자 제도를 등에 업고 실력이 좋아진 국가대표 선수들은 올림픽 등에서 잇따라 메달을 쓸어담았다. 스포츠불모지였던 한국은 짧은 시간에 일약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체육특기자 선발 제도는 시행 초기부터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성과 맞물려 ‘불법 뇌물’, ‘부정입학’, ‘끼워팔기’, ‘사전 스카우트’ 등 온갖 부정이 끊이지 않았다. 학력 저하, 사회 부적응, 학교 내 집단화 등 다른 문제들도 불거졌다.

체육특기자 제도의 문제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2001년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올림픽 등 국제대회 성과가 국민들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때마다 다양한 제도 개선이 추진됐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요원했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성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체육특기자 제도의 문제점은 2016년 ‘정유라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2017년 ‘학습권 보장을 위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대학 체육특기자 선발 전형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2020년부터 단체종목 포지션별 모집 인원 및 개인 종목 종목별 모집인원을 의무적으로 명시하고 이를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대학이 임의로 정원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고 실기 및 면접 시에는 타 대학교수로 이뤄진 외부위원을 3분의 1 이상 참여하도록 권고했다.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는 각 대학의 입시 요강을 한눈에 나타내는 체육특기자 대입 포털을 올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체육특기자 제도를 바라보는 눈길은 곱지 않다. 일부에선 전면적인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축구선수 아들을 두고 있는 한 학부모는 “대회 성적에 따라 결정되는 체육특기자 제도 자체가 남아 있는 한 입시부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체육특기자 제도를 아예 없애고 각 대학이 원하는 학생 선수를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트 축구선수 출신인 황대호 경기도의회 의원(제2교육위원회)도 “학교 체육 정상화는 체육특기자 입시 제도 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대회 성적뿐만 아니라 학업과 비교과 활동을 반영한 균형있는 대학입시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선 여전히 체육특기자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용석 단국대 빙상부 감독은 “한국 체육 현실상 체육특기자 제도를 없앤다는 것은 스포츠를 없애라는 말 밖에 안된다”며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고 있지만 각 대학에선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체육특기자 제도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최근 권고안을 통해 “체육특기자 제도가 경기 실적 중심이 아닌 경기력, 내신, 출결, 면접 등이 반영된 종합적 선발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학생으로도, 선수로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건강한 체육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악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왔을 때 확실하고 신속한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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