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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U-20WC 결산] 전술적으로 웃으면서…'투혼'과 이별하자던 정정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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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으로만 승부한 것이 아니라 조직적·전술적·기술적 접근

뉴스1

16일 오전(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우크라이나의 경기를 마친 이강인 선수가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고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9.6.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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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폴란드)=뉴스1) 임성일 기자 = 한국 축구의 오랜 미덕은 '투혼' '투지' '근성' 등의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일맥상통한다. 객관적으로 세계적인 수준과 격차가 있는 한국축구가 그래도 큰 무대에서 유럽이나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들과 겨루려면 상대보다 더 많이, 악착같이 뛰어야했다. 기술도 힘이나 높이도 부족했으니 우리는 피가 나도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

그 힘으로 그래도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유지했고 또 세계와의 격차도 꽤 줄였다. 사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일으킨 마법도 투혼과 근성의 바탕 위에 아주 강력한 체력을 주입시켜 다른 팀들보다 많이, 조직적으로 뛰는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성과가 있었으나 그것이 답은 아니다. 거의 모든 축구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투혼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충고다. 자신들도 그렇게 배워왔고 어쩌면 지금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서도 '이대로는 곤란하다' 하고 있으니 모순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대회가 닥치면 "일단 이 악물고 뛰어"를 외쳤던 한국 축구다. 그런 의미에서 정정용호의 이번 도전기는 아주 유의미한 발자취로 기록될 전망이다.

한국 U-20대표팀이 16일 오전(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1-3으로 역전패했다. 선제골을 뽑으면서 기분 좋게 출발했으나 이후 3골을 내리 내주며 아쉽게도 고개를 숙였다.

이미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쓴 대표팀은 내친걸음 우승까지 노렸으나 마지막 점을 찍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얻은 대회다. 특히, 한국 축구도 세계무대에서 이전과는 다른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음을 입증한 대회였다.

2년 전부터 정정용 감독의 지휘 아래 중장기 플랜에 따라 움직였던 팀이다. 코치진은 우리 선수들이 소화할 수 있는 적합한 전술을 다양하게 준비해 반복적으로 숙지시켰고, 지원 스태프들은 개개인의 데이터를 계속해서 쌓아오면서 과학적으로 선수들을 관리했다.

큰 그림을 그렸기에 7경기 모두 똑같은 콘셉트가 없었을 정도로 다양한 전술 변화를 가하면서도 선수들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고, 무려 7경기를 치르면서도 그 흔한 부상 이탈자가 없었을 만큼 준수한 결과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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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축구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U-20 축구대표팀의 조영욱 선수가 14일 오전(한국시간) 폴란드 우치 훈련장에서 회복 훈련을 하고 있다. 2019.6.14/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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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번 대표팀도 다른 팀들보다 많이 뛰었다. 정 감독이 한국에서부터 "본선 상대는 우리보다 강하고, 때문에 우리는 상대보다 1.5배에서 2배는 더 많이 움직여야한다"고 했던 것처럼 쉼 없이 뛰었다. 다칠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투쟁심도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투혼만이 무기는 아니었다는 게 달랐다.

향후 우리도 전술적으로 접근하는 축구, 기술이 가미된 축구가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의 싹을 보여줬다. 이강인이라는 '물건'이 포르투갈이나 아르헨티나나 에콰도르 선수들을 '기술'로 농락하던 모습은 이전에 잘 경험하지 못한 쾌감을 선사했다. 팀이 준우승에 그쳤는데 골든볼을 받았다는 것은 FIFA 역시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이강인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이 합을 맞춰준 덕분이다. 정정용 감독의 일관된 지향점 아래에서 전술적 훈련을 반복했기에 '쿵짝'이 맞을 수 있었다. 이강인이 잘했으나 이강인만의 팀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대회 전체를 돌아볼 때 특정 선수의 개인전술에 의한 득점보단 두 명 이상의 호흡으로 합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 더 많았다는 게 조직적 훈련이 잘 됐다는 방증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 친구들 웃으면서 뛰었다는 것이다. 즐겼다는 의미다. 결승 무대를 앞두고 이강인은 "전혀 결승전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치르고 있는 여러 경기들 중 하나 같다"고 했고 핵심 수비수 김현우는 "결승전 무대에 서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긴장되진 않는다. 이것은 축제 아닌가. 최대한 즐기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진 모든 것을 다 짜내어 뛰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근성'만으로 싸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A대표팀들이 참가하는 월드컵을 보면, 이제 한국만큼 안 뛰는 나라도 없다. 브라질도 독일도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한국 특유의 투혼'이 빛 바래지고 있는 시점에서 정정용호가 세운 이정표는 그래서 더 값지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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