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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스스로 진화하는 '무서운 10대들', 세계를 놀래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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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대한민국의 무서운 10대들이 세계를 깜짝 놀래켰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1983년 ‘멕시코 4강 신화’를 뛰어넘어 2019년 ‘폴란드 결승 기적’을 완성했다.

한국 U-20 대표팀은 12일(이하 한국시간) 폴란드 루블린의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결승행 티켓을 확보했다. 오는 16일 오전 1시 우치 경기장에서 우크라이나와 결승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놓고 한판 대결을 펼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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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U-20 대표팀 4강 선발 출전 선수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지솔, 이재익, 오세훈, 김현우, 이광연, 황태현, 김세윤, 최준, 이강인, 정호진, 고재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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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 대신 자율’ 36년 전과 180도 달라진 축구문화

1983년 멕시코 대회 4강 진출 이후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한국 축구는 2019년 리틀 태극전사 덕분에 36년 만에 4강 재현의 꿈을 이뤄낸 데 이어 더 나아가 한국 남자축구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U-20 대표팀만 놓고 보면 천지개벽 할 수준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36년 전 ‘멕시코 4강 신화’를 이룬 선배들은 맞으면서 운동했다. ‘독사’로 불렸던 박종환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어린 선수들을 호되게 몰아쳤다. 험악하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지옥훈련을 반복했다. 심지어 멕시코 고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방독면을 쓰고 풀타임 연습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멕시코 청소년 대회 당시 전반전이 끝나면 라커룸에서 따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기도 했다. 승리지상주의가 절대적이었던 그 시절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견디고 이겨내야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지금 선수들에게 그때 방식으로 지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멕시코 4강 신화’를 넘어 ‘폴란드의 기적’을 일궈낸 정정용호 선수들은 강압적이 아닌 자율적인 환경에서 즐겁게 성공을 일궈냈다. 정 감독이 자주 하는 말은 “멋지게 놀고 나와라”다. 달라진 한국 축구를 보여주는 희망적인 예다.

△수평적 분위기, U-20 대표팀 성공 원동력

이번 U-20 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역대 최고의 재능이 모였다는 점은 기대감을 높였다. 만 17살의 어린 나이에 스페인 1부리그 프리메라리가에 데뷔한 이강인(발렌시아)을 비롯해 김정민(리퍼링), 김현우(디나모 자그레브) 등 유럽파가 3명이나 포함됐다. 조영욱(서울), 전세진(수원) 등 K리그에서 주전급으로 활약 중인 선수들도 대거 합류했다. 역대 어느 U-20 대표팀과 비교해도 선수 면면으로는 뒤지지 않았다.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선수 구성 폭이 너무 다양했다. 유럽파와 K리그파, 심지어 대학생 선수까지 한 팀에 모였다. 나이별 대표팀에서 가장 큰 고민은 팀을 하나로 묶는 일이다. 비슷한 또래 선수들이 모이는 만큼 해외파와 국내파, 출신 지역과 학교 등으로 편이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서로 다른 출신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코치진의 노력이었다. 20대 후반에 일찍 선수 생활을 마치고 줄곧 유소년 지도자 생활을 이어온 정정용 감독은 누구보다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어린 선수들은 지시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수평적인 팀 분위기를 만들었다.

나이별 대표팀에서 가장 큰 고민은 경기를 뛰는 주전과 그렇지 못한 비주전 선수 간의 갈등이다. 주전이 가진 우월감과 비주전이 느끼는 박탈감이 충돌하면서 팀워크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곤 한다.

이번 U-20 대표팀은 그런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선 선수들은 항상 뒤에 있던 후보 선수들을 챙겼다. 이강인은 4강전 승리 후 “(이)규혁이 형이 아직 출전은 못 했지만 큰 힘이 되고 있다. 형이 오고 나서 팀 분위기가 바뀌어서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이규혁(제주)은 소속팀 사정으로 U-20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정우영(바이에른 뮌헨)을 대신해 추후 발탁된 선수다. 필드플레이어 가운데 유일하게 아직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신들린 선방으로 ‘빛광연’이라는 별명을 얻은 골키퍼 이광연(강원)도 경기에 나서지 못한 동료 골키퍼 박지민(수원)과 최민수(함부르크)에게 고마움을 돌린다. 그는 “다른 골키퍼들이 뛰었더라도 빛이 났을 것이다”며 “박지민과 최민수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하다“고 결승 진출 소감을 밝혔다..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 된 리틀 태극전사

U-20 대표팀 팀워크 중심에는 ‘막내형’ 이강인이 있다. 이강인은 훈련 기간 내내 형들과 장난치고 소통했다. 국내에서만 뛴 선수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축구를 했지만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형들도 살갑게 다가와 어울리는 이강인을 귀여워했다. 동시에 유럽 큰 무대에서 활약했고 성인대표팀에도 발탁됐던 이강인의 기량과 경험을 인정했다.

이강인이 ‘유럽파 빅리거’라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형들이 ‘선배’의 권위를 강요했다면 지금 성공은 없었다. 서로 받아들이고 인정했기에 그들은 하나가 됐고 기적을 일궈냈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 프리킥 어시스트를 연결한 이강인과 결승골을 터뜨린 최준(연세대)은 짧은 찰나에 순간적으로 눈을 맞춘 뒤 멋진 득점 장면을 연출했다. 경기를 중게한 배성재 SBS 캐스터는 “표정 페이크”라는 말로 순발력있는 이강인의 경기력을 평가했다. 평소 선수들끼리 스스로 전술을 토론하고 호흡을 맞추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플레이였다.

36년 전 선배들은 감독이 짜놓은 6가지 전술을 입에서 단내 나도록 무한 반복하며 몸에 익혔다. 지금 리틀 태극전사들은 감독이 시킨다고 무작정 따라 하지 않는다. 전술 의도와 효과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그 위에 창의성이 입혀지면 선수들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정정용 감독은 “지금 선수들은 경기를 통해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며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이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 동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보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하고 진화하는 리틀 태극전사들의 성공은 스포츠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많은 교훈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