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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단독인터뷰] 구자철② 내려놓은 국가 대표의 삶 "흥민이가 걱정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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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를 사랑해서 반납한 태극마크
| 구자철의 당부 "월드컵의 결과가 아닌 스토리를 즐겼으면"

[스포티비뉴스=용산, 한준 기자] “저는 사실 (손)흥민이가 많이 걱정돼요.”

2019년 AFC(아시아축구연맹) UAE 아시안컵을 끝으로 만 30세의 나이에 대표팀 유니폼을 스스로 벗은 구자철(30)은, 대뜸 손흥민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 국가 대표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말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구자철이 이른 나이에 국가 대표를 은퇴하게 만든 상황이 후배 손흥민(27, 토트넘 홋스퍼) 앞에도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만 18세의 나이로 성인 대표로 선발되어 2009년 FIFA 이집트 U-20 월드컵,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년 AFC 카타르 아시안컵,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브라질 월드컵, 2015년 AFC 호주 아시안컵, 2018년 러시아 월드컵, 2019년 AFC UAE 아시안컵에 차례로 참가하며 76회 A매치를 치른 구자철은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자,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의 주장으로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태극마크는 구자철에게 영광이고 자부심인 동시에 좌절과 상처의 기억이기도 하다. 2018-19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일정을 마친 뒤, 6월 A매치와 관계가 없어진 구자철은 유럽에서 여유롭게 가족 여행을 보낸 뒤 5월 말 한국에 들어왔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스포티비뉴스와 마주 앉은 구자철은 기성용과 대표팀에서 동반 은퇴를 하게 된 상황, 그리고 한국 축구와 대표팀, 대표 선수들에 대한 몇몇 질문에 “오로지 제가 왜 은퇴를 선택했는지만 얘기할게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로 한정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구자철의 이야기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다. 구자철은 자신이 이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그가 애써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다. 지난 13년간 국가 대표 생활을 정리해야 했던 심정을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 선수들의 걱정이 그 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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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에 국가대표 은퇴, 구자철이 감당해야 했던 삶

구자철은 귀국 후 첫 일정으로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토크 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에서 한 차례 더 토크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대표팀을 은퇴했지만 한국 축구에 기여하기 위해 준비 중인 여러 프로젝트의 배경이다.

구자철은 유소년 시기의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잘못된 운동이 몸을 망가뜨렸고, 그것이 프로 선수와 대표 선수로 고된 일정을 소화하는 데 악영향을 미쳤다.

“일단 저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너무 많이 했어요. 아파도 참고 했고, 성인 레벨에서는 그 피지컬과 체력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부상도 많았고요. 그 상태에서 비행기 타고, 실질적으로 월드컵 예선을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대표팀 경기를 가야 해요.”

유럽 진출 선수가 증가하는 것은 한국 축구 발전의 척도다. 하지만, 유럽과 한국의 거리, 광활한 거리를 넘나들어야 하는 월드컵 아시아 예선의 물리적 부담은 한국이 배출한 최고의 선수들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상 이상의 역경을 안겼다. 구자철은 이 상황을 겪어야 하는 개인의 심정을 날것으로 전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소속팀) 경기를 해요. 일요일에 비행기 타면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한국에 도착해요. 수요일에 운동하고, 목요일 혹은 금요일에 경기를 해요. 다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우즈벡이나 이란으로 10시간을 비행기에 있어요. 총 이동 시간은 더하겠죠. 그리고 나서 월요일에 회복하고 화요일에 또 경기를 뛰어요. 그리고 나서 수요일에 (소속팀으로) 가면, 목요일에 회복훈련하고 금요일에 팀과 운동을 해요. 토요일에 경기를 해요. 한 시즌이 거의 10개월, 9개월 반인데 7개월은 그렇게 해야 해요. 그러면 이미 부상이 많은 상태에서 쌓이고 쌓이니까, 대표팀에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가 없어요.”

아시아축구연맹이 동서로 분리해 예선을 치르지 않는 한, 이러한 일정은 받아야 들여야 하는 불변의 현상이다. 해외파는 아시아 예선전에 부르지 말아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렇게 힘들게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에 대한 배려나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왔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인데 모든 책임은 선수가 오롯이 혼자 져요. 어떤 누구도, 거기에 대해 도움을 주지도 않고요. 배려해주지도 않고 알아주지 않아요. 비난을 받고. 한국에서 경기를 뛰고, 경기에 졌거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그런 것은 어떤 누구한테도 중요하지 않아요.”

언론과 여론은 과격하고, 대표 선수들은 무방비 상태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 잘해야 본전, 팀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도매금으로 비판을 받고, 팀이 승리해도 부진했던 선수는 따로 저격된다. ‘요즘’ 선수들이 대표팀을 기피하게 된 것은 대표팀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대표 경기를 치른 뒤 심리적으로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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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거리 비행, 치열한 경쟁' 해외파 국가대표, 몸만큼 마음도 아팠다

유럽 무대에 도전하고, 생존 경쟁을 벌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소속팀으로 돌아간 이후의 ‘멘털 관리’가 더 어렵다. 더 치열한 무대에서,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철저하게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독일에 가면, 엄청나게 의욕을 잃고 가더라도,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또다시 소속팀에서 주전 경쟁을 계속 치러야 해요. 제가 대표팀에 가면 그 시간 동안 제가 비어있는 10일 동안 다른 선수들이 그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엄청나게 훈련을 해요. 제가 만약 대표팀에서 경기에 졌다고, 혹은 실망을 했다고, 비난을 받았다고 소속팀까지 이어오면, 주전 경쟁에서 밀리게 되는 거에요.”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경기하는 것과 더불어, 치열한 주전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 훈련장에서나 경기장 안에서 조절에 실패한다. 그러면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100%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 안에 들어가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가 어렵다. 몸이 좋을 때는 참고 견디며 해내던 것들은, 시간이 가면서 몸의 내구성을 떨어트리고, 자신감은 물론 기량 자체까지 저하시켜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다.

“그러한 것을 반복하면서 때로는 무리를 하게 되고, 반복하다 보니까 제가 대표팀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스스로 얼만큼 더 줄 수 있을까 냉정하게 판단을 하게 됐어요. 그 시기가 길었어요. 내가 아니라 이 친구가 뛰는 게 오히려 더 좋을 거 같은데, 내가 계속 내 의도와 상관없이 대표팀의 부름을 받게 되고, 근데 내가 한국 축구를 진짜 사랑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서 내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한국 축구에 안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어불성설이라지만, 구자철이 대표팀을 스스로 떠난 것은 그가 축구를 사랑하고, 대표팀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도움을 못 주니까. 경기력으로.” 구자철은 이제 안간힘으로 버텨도 대표팀에 기여할 수 없는 한계점이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받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길어지니까. 그에 맞는 경기력이 안 나오니까. 몸 상태도 부상이 더 많아지고, 회복도 느리고, 체력적으로 못 받쳐주고, 지친 거죠. 수년을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안타까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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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철이 입을 연 이유, 후배 대표 선수들은 '지켜주길'

구자철이 이 이유로 태극마크를 반납했고, 새로운 세대의 후배들에게 같은 미션이 주어졌다. 구자철은 “일단 선수 개인이 많이들 신경쓰고 있고, 따로 본인들이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직접 관리하는 문화가 들어온 거 같아요. 선수들도 이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싶어서 개인적으로 다들 그런 활용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라며 개인적인 차원의 대비가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 차원의 준비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자철은 “관리가 필요해요”라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치른 시즌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올라 누구보다 긴 시즌, 누구보다 많은 경기와 많은 이동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손흥민에 대한 걱정을 말했다. 손흥민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치른 뒤에도 올 여름 쉬지 못한다. 6월 A매치에 포함됐고, 그 뒤에는 군사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 군사 훈련 뒤에는 곧바로 프리시즌 일정이 시작된다. 절정의 손흥민의 가장 큰 적은 상대 팀 선수가 아니라 너무 빠듯한 일정이다.

“전 사실 흥민이가 많이 걱정이 돼요. 진짜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도 대단하거든요. 그렇게 버텼다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경기 못하면 비난을…. 그런데 그런 거에 개의치 않고 정말 성숙하게 잘하고 있어요. 근데 정말 걱정이 돼요. 너무 강행군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너무 걱정이 돼요. 이건 선수 본인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협회, 선수, 감독 모든 사람들의 몫인 것 같아요. 분명히 한국 축구를 위해 뭔가 환경적으로 잘 됐으면 좋겠어요.”

구자철은 손흥민이 뛰고 싶어서 뛰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손흥민이 공개적으로 뛰는 것이 좋다고 발언한 것이 아닌 속내와 진의, 그리고 실제 몸 상태를 면밀히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만약 흥민이가 상관없다, 행복하다, 모든 경기 다 뛸 수 있다. 정말 진심으로 생각하고 원한다면 본인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정말 힘든데 보여지는 바깥에는 괜찮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건 모르는 거거든요.”

벤쿠버 화이트캡스로 이적하며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무대에서 뛰게 된 황인범은 구자철의 후계자로 꼽히는 선수다. 황인범은 유럽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하며 대표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구자철은 “인범이 같은 경우에도 MLS 가면서 대표팀 왔다갔다 하면 어느 정도 관리가 필요할 수 있어요”라며 짚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개인이 의지로 이겨내야 하는 문제로 치부해선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대표니까 모든 걸 이겨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캐나다에서 오는 건…. 주위의 도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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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철의 당부, 승리가 아니라 스토리를 즐겨달라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도움은, 실제 대표팀 운영상의 배려 뿐 아니라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몸을 다치는 것보다 마음을 다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회복이 더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축구의 자산이잖아요. 그렇게 우리가 흥민이를 아껴주고 인범이를 아껴주고, 다른 리그, K리그에 뛰는 모든 선수들을, 모든 사람들이, 기자들, 팬, 협회 모두가 존중하고 아껴준다면, 선수들도 한국 축구를 위해 더욱 더, 어떤 일이 됐든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노력할 것이고, 감사한 마음을 돌려줄 거라고 확신해요. 현실적인, 체계적인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모두가 존중하는 문화도 필요해요.”

구자철은 역대 가장 큰 비난과 의심 속에 치러진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과 2018년 FIFA 러시아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다. 2014년을 경험한 선수들이 2018년에 뛰는 모습은 처절하다는 표현도 부족한 수준이었다. 벼랑 끝에 내몰려 사력을 다하는 그들에게 ‘축구를 즐긴다’는 표현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월드컵일까? 구자철은 대표팀 선수들이 도마 위에 오르는 상황은 월드컵을 예선부터 이어지는 스토리로 즐기는 이들보다, 4년에 한번 본선의 결과만 보려는 이들이 많은 환경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스토리에서, 성적이 아닌 삶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랐다.

“이게 한국의 문화에요. 안타까운 건 뭐냐면, 어떻게 월드컵 진출을 했는지, 처음부터 이 팀을 응원하면서 생긴 스토리가 있어서 월드컵 대표팀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만 함께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저기 뛰는 저 선수가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어떤 중요한 골을 넣었고, 얼마나 힘든 과정 속에서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서기 위해, 그 과정 속에서 최선을 다했는지가 없는 거죠.

예선부터 선수를 응원했고, 월드컵에서 잘 했으면 좋겠다는 성숙한 응원 문화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거죠. 단지 월드컵 본선에 딱 나왔을 때 월드컵 자체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그런 스토리와 함께, 축구와 삶이 섞여서 희열을 느끼고, 이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응원하고 싶고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즐기는 게 아니라, 오로지 결과로 판단하고 보는 팬들이 아직까진 더 많다는 거죠.”

구자철은 축구가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며, 시선을 바꿔야 축구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레전드는, 결과가 아닌 스토리와 감동이 만든다는 것이 구자철의 생각이다.

“지나친 비난을 받는다면, 사람이 견뎌낼 수 없는 무게라는 게 있어요. 국가 대표팀의 선수라도 한 사람의 인격이 있고, 삶이 있거든요. 절대 축구가 전부가 될 수 없거든요. 지금은 결과만 봐요. 학교로 따지면 2등은 필요 없어. 1등만 해. 그런 문화인 거에요. 내가 이 팀을 응원하는 이유, 이 선수를 좋아한다든가, 이 팀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스토리에 감동을 받는다든가, 축구와 함께 삶 자체가 연결되는 게 아니라 단지 매 경기,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만 보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레전드 문화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 이제는 말할 수 있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이야기가 (3)편에서 이어집니다.

[단독인터뷰] 구자철① 구자철은 독일에서 한국축구의 미래를 설계했다
[단독인터뷰] 구자철② 내려놓은 국가대표의 삶 "흥민이가 걱정돼요”
[단독인터뷰] 구자철③ 브라질 월드컵 복기 "난 진정한 리더가 아니었다”
[인터뷰 if] 구자철, “2010년 결승전에 내가 뛰었다면? 제주가 K리그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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