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선생님께 띄우는 편지
나훈아 콘서트 '청춘 어게인' 포스터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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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선생님께.
초면에 갑작스런 편지를 띄웁니다. 가수 나훈아가 아닌 나훈아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기자들이 '선생님'이라 부르는 몇 분 안되는 가수 중 한 분이니까요. 오랜 세월 대중음악계에 쌓아올린 업적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지요. 싱어송라이터 능력을 겸비한 전통가요(트로트)계의 전설, 가혹한 자기관리로 이뤄내는 완벽한 콘서트 라이브 능력, 노래방 최다 수록곡을 자랑하는 가수 등의 수식어가 선생님께 늘 따라붙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뵌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래 전에 대중음악 담당기자를 했을 때도 이미 선생님은 언론 인터뷰를 안하기로 유명했으니까요.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편지를 올리는 이유는 먼저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주말 대성황을 이룬 '청춘 어게인' 서울 공연에 다녀오신 장모님이 무척 흡족해하시며,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고 하십니다. 선생님과 비슷한 연세임에도, 공연장에서 '오빠!'를 목청껏 외치셨답니다.
장모님을 공연장으로 모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 공연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나훈아 티켓은 귀하디 귀한 '효도 선물'이 됐습니다. 오랜만에 자식의 도리를 했다는 마음에 잠시나마 작은 행복을 누렸습니다.
강력한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가수 나훈아 [사진 예소리] |
최고의 효도선물 나훈아 티켓
나훈아 공연 온라인 예매가 시작되면 수많은 이들이 효도를 하기 위해 '피케팅' 전쟁에 뛰어듭니다. 티켓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피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이란 수식어가 붙었겠습니까.
저 또한 어린 조카들까지 동원해 피케팅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온라인 예매는 성공하지 못했고, 중고판매 사이트에 나온 티켓을 겨우 구해 얼굴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나훈아 공연 한 번 보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장모님은 공연에 가지 못한 주변 어르신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장모님을 모시고 공연을 보러 갔던 아내의 반응 또한 의외였습니다. 나름 콘서트를 자주 보러 다니지만, 전통가요에는 별 관심없던 아내도 "흠잡을 데 없는 공연"이라며 '엄지 척'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공연장에서 팬들이 '내가 졌다'고 느낄 정도로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는 게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이라 강조했던 선생님의 소신이 떠오르더군요.
무대에 대한 일부 불평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가황(歌皇) 나훈아'지만 공연 중 사진·동영상 촬영을 금지하고, 입장 전 관객들의 휴대전화 렌즈에 촬영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건 좀 심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해합니다. 무대도 엄연한 저작권 보호 대상입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무대에 대한 자존심과 애착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절차도 필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드리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의 공연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면 어떨까요. 나훈아 공연을 보고 싶어도 피케팅 전쟁에서 실패하거나, 십수만원의 티켓값을 감당하지 못해 마음 속으로만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단 한 번만이라도 공연 실황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이 TV를 꺼린다는 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꼭 방송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터넷과 유튜브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세상 아닙니까. 방송사 외에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동영상에 최적화된 공연 실황 콘텐트를 만들어 보다 많은 이가 '가황 나훈아'를 누렸으면 합니다. 무료 시청을 요구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좀더 많은 이가 '72세 청춘'과 함께 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입니다. 올해 전국 투어를 끝낸 뒤 공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72세 청춘'이 주는 희망 노래
효과는 클 것 같습니다. 나훈아 공연표를 부모님께 구해드리지 못해 불효자가 된 느낌을 안고 살아가는 수많은 자식들이 가슴을 펴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공연장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들께도 큰 선물이 될 듯 합니다. 지금의 나훈아를 있게 한 팬들의 성원에 대한 귀중한 답례가 되는 것은 물론이겠지요.
그렇다고 라이브 공연이 위축되지는 않을 겁니다. 나훈아의 목소리와 몸짓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절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나훈아는 우리 어르신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아이콘이 됐다고 믿습니다.
나훈아 공연을 본 아내가 해준 말이 또 있습니다. "과거는 떠나보내고 오늘을 살아라" "재산은 맑은 정신일 때 자식들에 조금씩 나눠주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 써라" 등 공연 중간중간 객석에 던지는 말들이 꽤 인상적이었다는 겁니다.
분명 그런 말들엔 선생님 자신이 숱한 스캔들과 난관을 온몸으로 통과해오며 체득한 삶의 지혜와 깨달음이 녹아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얼마 전 전통가요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가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대의 라이벌이었던 남진 선생님에 대해 "너무 좋은 사람이다. 그가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 그는 성격이 유들유들해 주위에 사람이 많았지만 나는 성격이 너무 강해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잘생겼지만 나는 못생겼다"고 했고, 가왕의 자리를 양분하고 있는 조용필 선생님에 대해선 "팬 숫자만 따져도 조용필이 훨씬 많다. 난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고 들었는데, 라이벌 가수들을 치켜세우면서 자신을 낮추는 겸허하고 진솔한 태도에서 큰 어른 다운 연륜과 인간미가 느껴졌습니다.
주철환 교수(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는 칼럼에서 선생님에 대해 이같은 표현을 썼습니다.
"나훈아는 잊고 지내던 모정의 온도를 일깨워준다. 한마디로 고향의 어머니가 차려준 밥 같은 가수다."
전통가요의 전설로 꼽히는 가수 나훈아 [사진 예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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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
저도 이 말에 적극 동의합니다. 나훈아의 수많은 노래들이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돼주기에 오랫동안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고 있는 것이겠죠. 그렇기에 꽤 오랜 공백이 있었음에도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노래와 공연을 그토록 갈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선생님은 이번 공연에서 "나는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꾸준히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고 있는데, 언론과의 접촉이 없다고 해서 신비주의 딱지를 붙이는 건 무리가 있지요.
하지만 11년간의 칩거와 공연의 희소성 등의 이유로 신비주의가 어느덧 선생님의 그림자 같은 존재가 돼버린 게 사실입니다. 그런 신비주의 딱지가 억울하다면, 지금이라도 공연 외에 조금씩 대중들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부탁드린 대로 공연 실황을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시점에 대중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은 첫 단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재벌 회장이라도 티켓을 사서 공연장으로 오라"는 '관객 평등주의'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선생님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나훈아 공연을 보고 난 뒤 "나훈아 공연을 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신 어르신 관객들도 있다고 합니다. 피케팅 전쟁을 치러내며 어렵게 티켓을 구해준 자식들에 대한 감사를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겠죠.
하지만 실제로도 나훈아 공연 관람을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은 어르신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듯이, 나훈아 공연을 볼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날들 또한 그리 길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에겐 공연장의 열기가 그대로 담긴 공연 실황이 무척이나 소중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이번 공연에 맞춰 새 앨범 '벗2'를 발표하셨습니다. 앨범에 실린 '망모(亡母)'와 '울아버지'를 들으며 울컥했습니다. 저도 50대에 접어든 까닭이겠죠. 제 부모님 세대는 더 절절하실 겁니다. 이번 공연에 72세 선생님의 시스루 의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젊어지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물론 20~30대 등 보다 많은 팬들이 선생님과 만나는 통로가 생겼으면 합니다. 그게 영원한 청춘 나훈아가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요.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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