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FA 어워즈가 12월18일 JW메리어트동대문에서 열린 가운데 정몽규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한국 축구가 참패했다. 그라운드 안이 아닌 밖에서 고개를 숙였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지난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정기총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위원, 아시아축구연맹(AFC) 부회장 등 4년 임기의 두 개 선거에 출마했으나 전부 떨어졌다. 선거 결과에 따라 한국은 세계 및 아시아 축구계 요직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지난 2011년 당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FIFA 부회장 선거에 낙선함에 따라 공백이 생겼던 한국 축구 외교는 정몽규 회장이 2년 전 평의회 진입을 이루면서 복원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 쓴 맛을 보면서 아시아 내에서도 발언권이 대폭 줄어들었다.
FIFA 평의회는 기존 25명이었던 집행위원회를 개편해 인원을 37명으로 늘린 조직으로 국제 축구계 주요 의사 결정을 다룬다. 2013년 대한축구협회장이 된 정 회장은 지난 2015년 집행위 선거에 출마했다가 한 차례 낙선했다. 이후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이 물러나고 지안니 인판티노 현 FIFA 회장이 취임하면서 평의회가 생겼고 정 회장도 2017년 평의회위원이 됐다. 2년 전 당선은 행운이 따랐다. 쿠웨이트 측 인사가 선거 직전 사임하면서 경쟁률이 1대1이 됐다. 정 회장 등 모든 출마자가 무혈입성했다. 이번엔 달랐다. 총 5명이 선출되는 가운데 정 회장을 비롯해 두 자오카이 중국축구협회장,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과 메디 타즈(이란), 프라풀 파텔(인도), 마리아노 아라네타(필리핀), 사우드 아지즈 알 모한나디(카타르), 칼리드 이와드 알테비티(사우디아라비아) 등 8명이 출마해 경쟁률이 1.6대1이나 됐다. 선거 직전 타즈가 사퇴하고 AFC 부회장을 택했다. 정 회장은 두 명만 제치면 연임이 가능했으나 실제론 한·중·일 등 동아시아 3개국 후보가 모두 당선되면 안 된다는 기류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표심이 4년 전 집행위원회에 입성한 다시마, 아시아 내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중국 후보 두 자오카이를 밀어주면서 정 회장은 아라네탄와 알 모한나디, 파텔에도 밀려 6위에 그쳤다.
더 안타까운 것은 AFC 부회장 선거다. 아시아 내 5개 지역에서 한 명씩 선임되는 규정에 따라 정 회장은 동아시아 지역 부회장 재선에 도전했다. 그런데 FIFA 평의회에 입성한 두 자오카이가 선거 직전 후보에서 물러나며 정 회장과 간바타르 암갈란바타르 몽골축구협회장의 양자 구도가 됐다. 한국과 몽골은 축구 수준이나 저변, 지명도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결과는 18-28 완패였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고, 9회 연속 아시아를 대표해 월드컵 출전을 이룬 한국 축구의 위상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각에선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큰 중국이 이번 선거를 묘하게 끌고 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번 참패가 단순한 선거 공학적 논리는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아시아 축구에 대한 공헌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한국 축구에 보낸 경고라는 것이다. 한국은 대표팀과 클럽에서 모두 아시아 최강의 실력을 갖고 있다. 정몽준~정몽규로 이어지는 ‘현대가’가 25년 넘게 국제 축구계의 요직을 맡았다. 그러나 스폰서 참여, 작은 대회 유치 등 아시아 축구에 대한 투자나 기여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이번에 ‘왕따’에 가까운 선거 결과를 초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AFC엔 중국과 일본, 카타르 기업들이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으나 한국 기업은 삼성이 2016년 상반기를 끝으로 발을 빼는 등 하나도 없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은 성적을 잘 내서 돈은 챙기지만 돈을 내는 국가는 아니다. 여기에 AFC의 연령별 토너먼트 예선 등 작은 대회 개최도 소홀히 하고 있다. 한국의 얄미운 행태가 아시아 내에서 ‘괘씸죄’를 부른 모양새다. 현대-기아차가 FIFA 파트너(메인스폰서)를 맡고 있지만 FIFA의 메이저대회인 월드컵은 다른 기업들도 탐을 낼 만큼 스폰서 효과가 확실한 대회다. 결국 투표하는 AFC 회원국들이 한국을 축구외교에서 사실상 축출하기로 마음 먹은 배경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030년 혹은 2034년 월드컵 남·북·중·일 공동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축구 열기가 뜨거운 동아시아가 하나로 뭉치고 나아가 동북아 평화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구상에서 나온 계획이다. 가깝게는 2023년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를 열기 위해 유치의향서를 FIFA에 제출했다. 2023년 아시안컵 개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일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전방위 축구 외교를 펼쳐야 하는데 이번 정 회장의 두 선거 동시 낙선으로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은 2032년 월드컵 및 2023년 아시안컵 단독 개최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23년 여자월드컵 유치 의향서를 냈다.
일단 정 회장은 국내 축구 경쟁력 강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낙선 직후 “지난 2년 동안 최선을 다해 활동했으나 아쉽다. 당분간 국내 축구계 현안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가’로 대표됐던 한국 축구 행정 및 외교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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