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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아이언맨 윤성빈 금빛 질주, 1회용으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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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8개월, 길잃은 한국 썰매

1141억원 투입 슬라이딩센터 폐쇄

국산 썰매 제작 중단, 예산도 삭감

세계선수권·월드컵 반납할 처지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지”

중앙일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스타트를 하는 윤성빈.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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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아닌지….”

2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지난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스켈레톤 스타’ 윤성빈(24·강원도청)과 은메달을 딴 봅슬레이 남자 4인승 선수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그러나 새 시즌을 앞두고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자리는 불안감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탄식의 장으로 변했다.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이후 ‘장밋빛 미래’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올림픽 이전의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환호한 지 불과 8개월, 하지만 썰매 영웅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썰매 환경이 이들을 실망시켰다. 총 공사비 1141억원을 들여 만든 국내 유일의 썰매 전용 경기장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올림픽이 끝난 뒤부터 문에 굳게 잠긴 상태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경기장 내에 있는 실내 아이스 스타트 훈련장도 이용하지 못했다. 연간 50억원을 들여 썰매 제작을 맡았던 현대자동차는 더는 썰매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부 지원 예산이 전년 대비 70%나 줄어들면서 대표팀 규모도 줄었다. 전지훈련비는 지난해 10억원에서 올해 2억원으로 줄었고, 대표팀의 조력자 역할을 하던 외국인 스태프도 8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썰매 대표팀의 전체 규모도 50여명으로 40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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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ㆍ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윤성빈 선수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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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달라진 환경 탓에 대표선수들은 제대로 새 시즌을 준비하지 못했다. 여름에는 전북 고창, 충북 진천선수촌 등에서 육상 훈련과 체력 훈련만 해야 했다. 실내 아이스 스타트 훈련장을 이용하지 못해 선수들은 평창 야외 스타트 훈련장에서 바퀴 달린 썰매에 몸을 실어야 했다. 봅슬레이 대표팀 서영우(27·경기연맹)는 “비시즌에는 얼음판 한 번 밟아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용(40) 봅슬레이·스켈레톤대표팀 총감독은 “선수들에게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은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훈련을 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썰매 환경이 과거로 돌아갔다. 훈련을 제대로 못 하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 썰매는 평창올림픽 이전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의 썰매를 빌려 타는 신세였다. 그러나 선수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썰매 신화를 썼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최신식 시설을 만들어놓고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는 존치하기로 가닥을 잡고도 운영 주체를 정하지 못했다. 성연택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사무처장은 “연맹이 운영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문제를 풀려고 했다. 그러나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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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봅슬레이ㆍ스켈레톤 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이용감독(가운데)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전정린 선수, 원윤종 선수, 이용 감독, 김동현 선수, 서영우 선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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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은 지난 6월 국제연맹 총회를 통해 2019~20시즌과 2020~21시즌 월드컵, 2023년 세계선수권 개최권까지 따낸 상태다. 그러나 국내의 미온적인 반응 때문에 이를 반납해야 할 처지다. 이용 감독은 “내년 4월 국제연맹 차원에서 관련 사항을 다시 논의할 것 같다.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봅슬레이 대표팀 4인승 멤버 김동현(31·강원도청)은 “은메달을 딴 멤버들이 앞으로 4년을 준비하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표팀 장비는 경쟁국보다 3~4년 정도 뒤처진 상태다. 일단 이런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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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강원도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에서 은메달을 따낸 대한민국 원윤종-서영우-김동현-전정린 조가 시상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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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대표팀은 24일 새 시즌 월드컵 준비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할 예정이다. 그러나 선수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대당 수억 원이 드는 썰매 운송 비용이 부담스러운 데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견제도 이겨내야 한다. 총체적인 난국 속에 대표팀은 올 시즌 월드컵에서 어떤 성적을 거둘지 목표도 설정하지 못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이후 환경이 열악해진 건 비단 썰매 종목만이 아니다. 일부 인사의 전횡 등 행정 난맥상이 드러난 빙상연맹은 지난달 20일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이미 지난해 8월 관리단체로 지정된 컬링연맹은 1년 넘게 회장 공석 상태에서 표류 중이다. 스키도 예산 지원이 줄어든 탓에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 알파인 스키 등 종목별로 스태프 수를 크게 줄였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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