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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8 (화)

엄마의 이름으로…‘철녀’ 이도연 또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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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의 4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이도연(46)은 기가 세고 당찼다. 직업군인을 꿈꿨을 정도로 체격도 좋았다. 그러나 교복을 막 벗은 해 한 건물에서 추락사고를 당해 척추장애를 입고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엔 눈물로 지새운 나날들이었다. 이듬해 남편과 만나 두 살 터울의 세 딸을 낳았지만, 남편과 헤어지는 통에 육아까지 전담해야 했다.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공장일부터 허드렛일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자립심 강한 딸들이 훌쩍 커 엄마를 살뜰히 챙기기 시작하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세계일보

이도연이 9일 오전(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의 센툴 국제 서키트에서 열린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 핸드사이클 여자 로드레이스(스포츠등급 H2-4)에서 금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핸드사이클은 시속 60㎞까지 찍히는 ‘고속’ 스포츠다. 사이클 한 대 가격이 1000만원을 넘어가 한숨만 쉬고 있던 그에게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음식점 장사를 놓지 않던 어머니 김삼순(71)씨가 말없이 봉투를 건넸다. 피같이 모은 1800만원이었다. 이도연에게 사이클은 ‘엄마’의 이름을 짊어지고 달리는 ‘사명’이 됐다.

‘철의 여인’ 이도연이 새로 마련한 장비를 타고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핸드사이클 부문 2회 연속 2관왕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도연은 9일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의 센툴 국제 서키트에서 열린 대회 핸드사이클 여자 로드레이스(스포츠등급 H2-4) 결선에서 1시간 15분16초713의 기록으로 제일 먼저 결승선을 끊었다. 전날 여자 도로독주 금메달에 이어 여인은 낭보다.

경기 뒤 이도연은 “기뻐야 정상인데 그냥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나에게는 더 크다. 오늘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했다. 달리다 보면 멈추고 싶고, 쉬고 싶고,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걸 이겨내고 달려온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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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연이 9일 오전(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주 보고르의 센툴 국제 서키트에서 열린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아시안게임 핸드사이클 여자 로드레이스(스포츠등급 H2-4) 결선에서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선수 이전에 ‘엄마’인 이도연에겐 힘찬 페달의 원동력 역시 가족이었다. 이번 대회를 두 달 앞둔 지난 8월 이탈리아 마니아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장비 불량 탓에 제대로 된 레이스를 펼치지 못했는데, 작은아버지가 선뜻 새 장비를 사라며 2000만원을 내줬던 것. 그는 "작은아버지가 세계선수권에서 장비 불량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우셨다고 하더라"면서 "적지 않은 돈인데도 열심히 하라며 건네셨다. 장비에 문제가 있으면 또 사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보험을 든 듯한, 든든한 느낌이 든다"고 되돌아봤다.

그는 늘 세 딸인 설유선(25)·유준(23)·유휘(21)를 위해 달린다. 이도연은 "첫째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길을 가다 친구들을 만나니까 우리 엄마라며 인사를 하라고 하더라. 다른 엄마들은 건강한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 창피했다. 큰 딸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왜 창피하냐'며 화를 내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엄마를 당당히 여겨준다. 딸들에게 엄마가 보물이다. 엄마 노릇도 제대로 못 해줬는데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달리고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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