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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4년마다 도돌이표 … 2022 카타르 월드컵 땐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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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축구를 리셋하라 <상>

브라질 대회 후 “경쟁력 확보” 공언

‘슈틸리케는 실패’ 알고도 경질 미뤄

문제점 지적 백서는 만들고도 안 써

이영표 “4년 뒤 같은 시행착오 우려”

러시아 월드컵이 프랑스의 우승과 함께 막을 내렸다. 프랑스는 지난 16일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에서 볼 점유율(39% 대 61%)과 패스 횟수(269개 대 548개)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밀렸다. 그러나 찬스를 놓치지 않는 실리 축구로 4골을 몰아넣으며 지난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뒤 그에 맞춰 선수단을 꾸리고, 현대 축구의 최신 전술 트렌드를 치밀하게 분석해 경기력에 적극 반영한 게 월드컵 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우승은 4년 주기로 열리는 월드컵 중심의 단기 계획과 향후 4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계획이 적절히 어우러져 맺은 열매다. 지난 2012년 프랑스 대표팀을 맡은 디디에 데샹(50) 감독은 선수를 발굴·육성하는 중·장기 플랜은 축구협회에 일임하고 단기 계획 총 책임자로 나섰다.

2년 뒤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 8강전에서 독일에 0-1로 져 탈락한 직후 데샹 감독은 대표팀 주축 멤버들을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로 확 바꾸고 조직력 다지기에 전념했다. 그 결과 유로2016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포르투갈에 졌지만, 프랑스 대표팀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다시 2년간의 세밀한 준비 끝에 결국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지난 4년간 한국 축구는 프랑스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은 실패로 막을 내린 4년 전 브라질 대회와 놀랄 정도로 닮았다. 감독 교체 타이밍을 잘못 잡아 본선을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부랴부랴 ‘소방수’ 감독을 투입한 것부터 비슷했다. 브라질 대회에선 홍명보(49) 감독이, 이번엔 신태용(48) 감독이 총대를 멘 게 차이점이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을 마친 직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지도자를 영입한 뒤 4년간 꾸준히 대표팀을 맡겨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염불에 그쳤다. 연봉 상한액을 200만 달러(약 23억원) 선에 묶어 놓은 탓에 세계적인 명장들과는 제대로 협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좋은 지도자들을 줄줄이 놓친 뒤 차선책으로 데려온 인물이 울리 슈틸리케(64·독일) 전 대표팀 감독이었다. 전술적으로 무지한 슈틸리케 전 감독이 선수 탓을 일삼는 오류를 범한 이후에도 축구협회는 계약해지 시 발생할 위약금을 우려해 차일피일 경질을 미뤘다. 2년 9개월간 ‘불편한 동거’를 지속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신태용 감독에게 A대표팀 지휘봉을 넘긴 이후에도 축구협회의 월드컵 본선 대비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4년 전 ‘아프리카의 복병’ 알제리의 전력을 오판해 1승 상대로 점찍었다가 2-4로 완패했던 우리나라는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상대 팀 중 FIFA 랭킹이 가장 낮다는 이유로 스웨덴을 조별리그 최약체로 분류한 뒤 시간과 인력을 총동원해 대비했다. 결과적으로 판단 착오였다. 맞대결에서 단 한 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끝에 0-1로 져 16강 진출 시나리오에 금이 갔다.

반면 스웨덴은 전력분석관을 통해 우리 대표팀의 훈련 장면을 찍은 1300개의 동영상 클립을 입수하는 등 공들여 분석한 끝에 맞대결에서 승리했고,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해 8강까지 올랐다.

월드컵 개막 직전에 활용하는 경기력 향상 프로그램은 오류투성이였고, 핵심 선수 부상 등 돌발 상황을 대비한 ‘비상 매뉴얼’도 부족했다. 스피드, 활동량 등 한국 축구의 장점을 극대화할 전술 대신 상대 특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소극적인 경기 운영에 그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교훈으로 삼기 위해 ‘월드컵 백서’를 만들었지만,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멕시코와 2차전에서 1-2로 패한 직후 “수비 조직력을 튼튼히 다졌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고, 월드컵 패배라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실패에서 얻은 데이터를 제대로 남겨두지도 않고, 그나마 남겨둔 데이터를 활용할 줄 몰라 썩히는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축구인들은 “감독이 바뀌고 실무진이 바뀌어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각급 대표팀 운영 업무를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을 겪은 뒤 많은 사람이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축구계도 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더 두려운 건 4년 후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좋은 선수들을 뽑아 좋은 프로그램 속에서 좋은 지도자에게서 축구를 배우도록 하면 된다”면서 “정답은 나와 있는데,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 행동하지 않는 앎은 결국 모르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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