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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LG 박용택 "타격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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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최다 안타 기록보유자 엘지 박용택 선수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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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39·LG 트윈스)은 지난달 22일 서울 잠실 롯데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타격의 역사를 새로 썼다. '타격의 신(神)'이라고 해 '양신'으로 불리는 양준혁(49)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보유한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안타 기록(2318개)을 넘어섰다. 박용택도 이제 '택신'이 됐다.

양신과 택신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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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통산 최다안타 기록(2천319개)을 세운 박용택이 23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기록 달성 후 가진 시상식에서 이전 기록 보유자인 양준혁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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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위원도 이날 경기장을 찾았다. 자신의 기록을 깬 후배에게 직접 꽃다발을 건네며 진심 어린 축하를 보냈다. 박용택은 "가장 먼저 축하받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양준혁 선배였다.

지난해 말 양준혁 선배가 주최한 자선 야구대회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니 '당연히 가야지'라고 선뜻 이야기해줬다. 기록을 세우기 2주 전쯤 다시 한번 말했는데, 잊지 않고 와줘서 너무 감사했다"고 밝혔다.

양신과 택신의 첫 만남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용택은 2001년 말 LG에 정식 입단하기 전 팀의 마무리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룸메이트가 양준혁이었다. 박용택은 "프로 첫 룸메이트였다. 2주 정도 함께 지내다 양준혁 선배가 삼성으로 이적했다. '너 잘 치겠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때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그는 "양준혁 선배가 2010년 은퇴할 때 최다안타 기록을 깰 선수로 나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통산 기록 달성을 위해선 기술이나 실력도 필요하지만, 부상 당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데뷔 후 올해까지 17년 동안 그는 300타석 이상씩을 소화했다. 선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큰 부상도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건강한 몸을 주셨다.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뭐든지 자제한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시즌 중엔 거의 마시지 않는다. 비시즌에 좋은 몸 상태를 만드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했다.

"실패 없인 성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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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LG 박용택은 타율 0.257로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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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걸었을 것 같은 그에게도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 박용택은 "기록을 남긴 선수 가운데 나만큼 실패해 본 선수도 드물 것"이라고 했다.

2002년 데뷔 첫해부터 그는 주전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2008년까지 7년을 뛰는 동안 타율 3할을 넘은 건 2004년이 유일하다. '게으른 천재'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가 뒤따랐다. 그는 "2008년까지 난 '그냥 괜찮은 타자' 정도였다"고 했다.

20대의 실패가 역설적으로 30대의 성공 비결이 됐다. 2009년은 박용택의 진짜 야구가 시작된 해다. 그해 타율 0.372로 타격왕에 오른 박용택은 지난해까지 9년 연속 타율 3할 이상, 100안타 이상을 기록했다.

박용택은 "김용달 코치님과 함께 한 2007~09년 3년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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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LG 트윈스-NC 다이노스 전이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LG 박용택이 경기전 김용달 전 코치에게 kbo리그 개인통산 최다안타 신기록 기념 꽃다발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잠실=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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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달 코치는 2007년 LG에 부임했다. 그는 "코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6년 차 선수였다. 알 만큼 안다고 자부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김 코치님은 내 생각이나 지식과는 다르게 접근했다. 2007년(타율 0.278)과 2008년(0.257) 연거푸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불신이 싹텄다"고 했다.

이어 박용택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코치님을 대하기도 했다. 사실 그 정도면 코치가 선수를 포기하기 마련이지만 김 코치님은 나를 놓지 않았다. 나 또한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박용택은 2009년 늑골 부상으로 한 달가량 늦게 시즌을 시작했다. 그는 "2009시즌을 준비하던 어느 날 김 코치님이 '2년 동안 미안했다. 올해는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을 테니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보렴. 막히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라'고 했다"며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잘 쳤다. 2년 동안 겪은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내 몸속에 들어와 있더라. 김 코치님이 지도해 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고 말했다.

박용택은 김 코치를 "최고의 멘토이자 스승님"이라고 말한다.

"공은 눈이 아니라 타이밍으로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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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2 <프로야구 삼성-LG> 22일 오후 대구구장에서 열린 2014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의 경기에 앞서 삭발을 한 LG 박용택이 그라운드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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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꿰뚫어 보는 눈이 생긴 건 6000타석을 넘어선 2014년부터다. 박용택은 "어느 순간 타석에서 공을 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공을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흔히 말하는 동체 시력은 순간 반응하는 몸의 능력이지만 칠 수 있는 공을 골라내는 능력은 아니다. 선구는 타이밍과 밸런스로 하는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이후 볼넷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박용택은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운다. 5년 전부터 노트에 목표로 하는 안타·타율·장타율·출루율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놓는다. 시즌이 끝나면 목표를 적은 노트를 꺼내 한 시즌을 되돌아본다. 최다안타 기록은 6월 말쯤 세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정확히 들어맞았다. 박용택에게 남은 목표는 '3000안타'다. 최소 4년은 더 뛰어야 달성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박용택 또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LG의 우승도 이루고 싶지만 혼자 힘으로는 해낼 수 없다. "올해 우승 적기가 아니냐"고 묻자 박용택은 "앞으로 계속 우승 적기가 될 것이다. 올해가 시작이다. 남들은 몇 년을 연달아 우승하는데 우리가 못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 선배다. 지난해 팀이 하위권을 맴돌 땐 주눅 든 후배들을 향해 "주접떨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엔 후배 칭찬을 입에 달고 산다. 박용택은 "후배들이 열심히 잘해주고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특히 김현수는 큰 힘이 된다. 박용택은 "야구 잘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김)현수는 똑같이 야구를 잘하면서도 밝고 긍정적이라 후배들이 잘 따른다. 혼자만 아는 선수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타격에는 정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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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최다 안타 기록보유자 엘지 박용택 선수가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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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은 "타격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똑같은 문제에 똑같은 답을 쓰면 틀리는 게 타격이다. 매번 답이 달라진다. 그래서 야구가 정말 재밌다.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야구의 타격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말도 있다. 바꿔 말하면 야구의 타격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이라고 했다.

그는 "기록을 세운 자부심보다 그동안 타격을 연구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도 야구가 싫어질 순간이 올까. 박용택은 웃으면서 "타율 5할을 치면 오히려 야구가 재미없을 거 같다. 안타 기계가 된 기분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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