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파나마전 멀티골' 루카쿠 "나를 만든건 가난과 차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데일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니즈니노브고로드=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벨기에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전세계를 향해 ‘분노의 멀티골’을 날렸다.

루카쿠는 19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피시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G조 1차전 파나마와의 경기에서 후반 14분과 30분에 연속골을 터뜨려 벨가에의 3-0 승리를 견인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벨기에는 루카쿠의 활약에 힘입어 승점 3점을 따내고 기분좋게 출발했다.

루카쿠는 이미 톱클래스 공격수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 중이다. 벨기에 명문 안더레흐트를 거쳐 2011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정착했다.

2012~2012시즌 웨스트브로미치에서 17골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6시즌 연속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2016~2017시즌에는 에버튼 소속으로 25골을 터뜨려 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맨유로 이적한 지난 시즌에도 16골을 거두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190cm 94kg의 엄청난 체격조건까지 갖춘 루카쿠가 오늘날 세계적인 골잡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분노’다. 분노의 근원은 어릴적 겪은 가난과 차별이다.

루카쿠는 러시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더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자신이 축구선수로 성장한 스토리를 자세히 소개했다.

루카쿠는 어릴때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다. 루카쿠는 “6살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우유에 물을 섞는 모습을 봤다. 우리 가족에게는 일주일치 식비를 감당할 돈이 없었다. 단순히 살림이 쪼들렸던게 아니라 파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루카쿠의 아버지는 콩고 출신의 프로축구 선수였다. 하지만 벨기에로 넘어왔을 때는 선수인생의 막바지여서 돈이 없었다. 2~3주 동안 전기 없이 지내기도 했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 어머니가 주전자에 끓여준 물을 컵으로 떠서 머리에 부어가며 샤워를 했다. 동네 빵집에서 빵을 외상으로 사는 것은 일상이었다.

루카쿠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물 탄 우유로 점심을 먹으면서 신께 다짐했다”며 “어머니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절대, 절대 그럴 수 없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루카쿠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꾼 것도 이때부터다. 루카쿠는 “어머니께 ‘반드시 안더레흐트에서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내 삶의 첫 번째 목표가 됐다”며 “유치원 쉬는 시간에 했던 축구도 내게는 결승전이었다. 내게 축구는 놀이가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축구선수로서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시련은 뒤따랐다. 인종과 출신에 대한 차별이었다.

루카쿠는 “내 키가 커지자 몇몇 선생과 학부모가 시비를 걸기 시작했디. 어른 하나로부터 ”애, 너 몇 살이니? 네가 태어난게 몇 년이니?‘라는 질문을 받았던 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고 밝혔다.

리에르세 유스팀에서 뛰던 11살 때 겪은 일도 소개했다. 그는 ”한 부모가 나를 붙잡더니 ’얘 신분증 어딨나요. 대체 어디 출신이죠‘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앤트워프에서 태어난 벨기에 사람인데 말이다“고 당시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꺼냈다.

루카쿠는 ”나는 항상 혼자였고 모든 걸 혼자서 해내야 했다. 가방에 든 신분증을 꺼내 부모들에게 보여줬다. 그들은 마치 그걸 검사하듯 서로 돌려보며 세심하 살폈다“며 ”그 모습에 피가 끓어올랐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는데 내가 너네 이이들을 다 끝장내버릴 거야‘라고 마음먹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루카쿠가 분노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또다른 힘이 됐다.

루카쿠는 ”12살 때 외할아버지가 전화로 ’내 딸(루카쿠의 어머니)을 잘 보살펴줄 수 있겠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약속하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5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적었다.

이어 ”외할아버지와 한 번 만 더 통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 딸은 잘 지내고 있어요. 이제는 집에 쥐도 없고, 바닥에서 잡을 자지도 않아요. 잘 살고 있어요. 그리고 더이상 사람들이 내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아요. 그들도 제 이름을 잘 알거든요‘라고 말이다“고 글을 마쳤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