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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골프 룰 위반이라는 한국의 '오케이 문화', 꼭 나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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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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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주가 지난 4일 US여자오픈 골프대회 14번 홀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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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태국 선수와 한국 선수가 보기 드문 접전을 펼쳤던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참가 선수와 대회 주관사인 USGA(미국골프협회) 사이에 평범한 아마추어들이 하는 동네 골프 라운드 같은 에피소드가 벌어졌다.

크리스티 커, 카리 웹 등 선수들은 공을 건드리는 이른바 터치 플레이를 해달라고 불평을 털어놓았고 협회 측은 어림도 없다며 요구를 거부했다. US여자오픈은 김효주 선수의 연장전 패배로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어디까지 터치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공에 진흙 묻자 선수들 터치 플레이 요구
선수들은 시합 전 폭우로 페어웨이가 물러져 공에 진흙이 묻어나자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라는 로컬 룰 적용을 주장했고 협회는 전통과 원칙을 앞세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골프 경기 시 페어웨이에 놓인 공을 그 자리에서 치지 않고 공을 들어 닦은 뒤 치기 편한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치게 하는 프리퍼드 라이라는 로컬 룰 문제가 대두한 것이다.

사실 아마추어 골퍼는 이 같은 터치 플레이에 대해 종종 말다툼을 벌이고 급기야 감정싸움까지 벌이기도 한다. 골프에서 플레이할 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을 건드릴 수 있느냐의 문제는 프로뿐 아니라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해묵은 골칫거리다.

골프의 기본 규칙은 있는 그대로 플레이하는 것이다. 골프공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건드릴 경우 1벌타를 부과받는다. 다만 예외조항이 있다. 폭설, 봄철의 해빙, 폭우, 혹서 등 기상의 악조건은 페어웨이를 골프 하기에 적당하지 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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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롯데 렌터카 여자오픈이 제주 바람에 36홀 경기로 축소됐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7일 치를 예정이던 대회 2라운드를 취소하고 8일에 최종 라운드를 열기로 했다. 사진은 강풍과 함께 눈이 내리는 경기장. [KLPGA 제공=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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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경우 누구는 친 공이 진흙에 묻거나 라이가 좋지 않은 자리에 놓이는 바람에 같은 페어웨이에 안착하더라도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골프의 다른 원칙인 공정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페어웨이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에 한해 예외를 둔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플레이어에게는 어디까지 터치 플레이를 허용해야 할까? 특이하게도 한국의 골프문화는 아마추어 사이에 광범위한 터치 플레이를 묵인하고 있지만 이는 늘 큰 문제를 야기한다. 규칙에서는 원칙적으로 터치 플레이를 금지하다 보니 친한 사람끼리도 공을 건드리는 문제를 놓고 감정싸움을 벌이다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도 봤다.

우선 친 공이 디보트(스윙후 파인 잔디자국)에 들어갔을 경우 아마추어 플레이어는 이를 옮겨 놓고 치는 경우가 제법 많다. 플레이하기 전에 동반 플레이어끼리 그렇게 하기로 합의하고 치는 경우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말다툼이 생기는데 내기 골프의 경우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디보트에 들어간 공을 구제해주는 것은 참으로 골프 철학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있는 그대로 치자는 원칙과 공정성의 문제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많은 골퍼가 페어웨이로 잘 친 공이 디보트에 빠지면 너무 억울해한다.





디보트 공 ‘프리퍼드 라이’조항 원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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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룰 개정 과정에서 디보트 구제를 요구하는 수많은 골퍼의 청원을 놓고 고민하다 끝내 들어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당연하게 구제해주자는 것은 시기상조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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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골프룰 개정을 관장하는 영국의 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의 골프협회(USGA)가 지난해 룰 개정 과정에서 디보트 구제를 요구하는 수많은 골퍼의 청원을 놓고 고민하다 끝내 들어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당연하게 구제해주자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다. 다만 골프장 상태가 나쁜 경우 프리퍼드 라이 조항을 원용해 디보트에 빠진 공을 옮겨 치는 편법을 동원하면 될 것 같다.

사실 한국 골프장은 회원제라 하더라도 외국보다 2배나 많은 6만 명 안팎의 내장객을 받는다. 퍼블릭 골프장의 내장객은 10만 명에 가깝다. 골퍼들이 친 공이 떨어지는 중간(IP)지점에 디보트가 엄청나게 많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마추어의 경우 정식 대회가 아니고 친선 게임에 한해 동반 플레이어들이 서로 합의를 하고 디보트 구제를 받는 것은 괜찮지 않나 싶다.

다음으로 공이 그린의 홀에서부터 퍼터 내 거리에 놓인 경우 넣은 것으로 간주하고 오케이를 주는 한국만의 골프문화는 좋은 의미에서든 안 좋은 의미에서든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하다. 홀에 골프공을 넣을 때까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이는 골프규칙 3조2항의 위반이다. 3조2항은 스트로크 플레이를 할 때 홀 아웃하지 않으면 실격이 된다고 하고 있다.





전 세계 유일의 그린 위 ‘오케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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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라운드 중인 조지 부시(왼쪽), 지미 카터(가운 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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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에서는 동반 플레이어가 상대방의 공이 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 오케이를 주지 않으면 우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 골퍼들이 골프장에 스트레스를 풀려고 나왔는데 퍼팅이 안 들어가 스트레스만 쌓여 간다고 불평하다 보니 생긴 문화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 특유의 오케이 문화나 디보트 구제 문화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도 자리 잡은 미국의 멀리건 문화를 살펴보자. 멀리건은 공이 오비 날 경우 벌타 없이 한 번 더 드라이버 샷을 치게 하는 경우다, 이는 6조 6항 위반으로 실격이 된다. 자기 스코어에 벌타 포함해 2점을 기록하지 않는 스코어 오기로 실격이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골프를 할 때 늘 셀프 멀리건을 줄 정도로 아마추어 사이에는 멀리건 문화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오케이 문화는 현실적으로 없앨 수 없는 것 같다. 현재와 미래의 골프는 ‘레디 골프(ready golf)’다. 순서와 관계없이 준비되면 빨리 치자는 운동이다. 오케이 문화를 없앨 수 없다면 이런 취지 아래 합리화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프로 선수도 공을 건드려 좋은 자리에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아마추어 플레이어의 경우 그런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터치 플레이도 골프규칙의 큰 틀 아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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