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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골프 접으려다… 평창 성화 봉송 후 마음 바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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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파운더스컵 우승… 부상 딛고 1년 만에 투어 19승째

"명예로운 행사에서 박수받으니 리우 때 최선 다하던 생각 떠올라

남편 조언따라 퍼터 바꿔 효과"

조선일보

지난달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박인비가 성화 봉송을 하는 모습. /오종찬 기자


"이제 골프 그만하겠다는 이야기는 쉽게 하지 않을 거예요. 오늘처럼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하면서 소렌스탐처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겁니다."

1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박인비(30)와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그는 지난해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허리를 다쳐 2년 연속 8월 말에 시즌을 접었다. 당시 "이런 일(부상)이 자꾸 왜 생기지?" 하며 "더 이상 골프를 계속하지 말라는 신호 같다"고 했다.

골든 슬램(올림픽 금+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한 마당에 골프를 계속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던 것 같았다. 그는 "모처럼 가을에 쉬면서도 골프를 계속하기 바라는 가족, 주변 사람들과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평창올림픽에서 마지막 성화 주자가 된 것이 갈등하던 마음을 다시 골프 쪽으로 이끌어 준 계기가 됐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었어요. 국가의 명예로운 행사에 불러주시고 박수까지 보내주시니 리우 때 죽기 살기로 최선 다하던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19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 파이어 골프클럽(파72)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은 박인비가 어떤 골퍼인지 다시 보여준 대회였다. 그가 최고 수준의 경기를 하면 다른 선수들과 경쟁은 큰 의미가 없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듯 경기하던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의 전성기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박인비는 이날 2013년 메이저 세 대회 연속 우승, 2016년 리우올림픽 우승을 차지할 때처럼 사상 최고 수준의 퍼팅 실력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박인비는 1번홀 버디 이후 11번홀까지 10홀 연속 파 행진을 이어갔다. 그 사이 55세 노장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와 머리나 알렉스(미국)가 1타 차로 쫓아왔다. 하지만 박인비는 12~15번홀에서 4연속 버디를 터뜨리며 경기를 끝냈다.

12번 홀에서는 그린 바깥에서, 13번 홀에서는 3m 넘는 까다로운 라인의 퍼팅을 집어넣었다. 박인비는 합계 19언더파 269타로 2위 그룹인 에리야 쭈타누깐(태국)과 로라 데이비스, 머리나 알렉스를 5타 차로 따돌렸다. 1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통산 19승을 기록했다. 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4000만원)였다.

1988년생인 박인비는 만 30세를 3개월 남짓 앞두고 있다. 그는 "30대를 시작하는 지점에서 우승을 차지한 게 좋은 신호탄이 된 것 같다"며 "골프와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즐겨 쓰던 뒤가 뭉툭한 말렛형 퍼터 대신 헤드가 일자형인 블레이드 퍼터를 들고 나왔다. 앞서 싱가포르에서 열린 HSBC챔피언십에서 샷에 비해 퍼팅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남편(남기협씨)이 '예전 퍼터는 실수가 나와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퍼팅 실수를 했을 때 공이 지나가는 길을 좀 더 연구할 겸 퍼터를 바꿔보자'고 해서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29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ANA인스퍼레이션을 앞두고 퍼터 교체를 실험했는데 덜컥 우승까지 차지한 것이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예전 명성에 기대는 골퍼는 전혀 되고 싶지 않아요. 은퇴하던 해(당시 38세)에도 3승을 거두었던 소렌스탐처럼 박수 받으며 떠나는 골퍼의 길을 걷고 싶어요."

[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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