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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메달 못 땄어도 좋아...평창서 기억할 '아름다운 개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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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2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슬라이딩센터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 가나 스켈레톤 대표 아콰시 프림퐁이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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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을 따지 못해도, 꼴찌로 들어와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한 선수들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선수들은 메달리스트 못지 않은 '또다른 영웅'들이었다.

지난 25일 폐막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메달을 딴 스타 선수들 못지 않게 각광받은 선수들이 있었다. 성적을 떠나서 평창올림픽을 통해 의미있는 첫 걸음을 내딛은 선수들이다. 92개국 2920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평창올림픽에서 국내외 '개척자들'은 남다른 개척정신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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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스켈레톤 국가대표 아콰시 프림퐁. 평창=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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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스켈레톤 경기에서 노란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3차 주행을 마친 뒤, 흥겹게 춤을 추면서 트랙을 빠져나갔다. 아프리카 가나의 최초 겨울올림픽 선수, 아콰시 프림퐁이었다. 성적은 30명 중 최하위였지만 그의 도전은 대회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미국진공청소기 업체 외판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육상, 봅슬레이를 거쳐 스켈레톤 선수가 됐다.

평창행을 확정짓고도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프림퐁은 이달 초 한국 기업가가 운영하는 가나의 한 이동통신기업 지원을 통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경기에서 입을 벌리고 어금니를 드러낸 사자의 사진이 담긴 헬멧을 착용했던 프림퐁은 "사자로부터 토끼가 빠져나오는 듯 하게 만든 것이다. 이제 나는 드디어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사자 입에서 뛰쳐나온 토끼가 됐다"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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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나이지리아 봅슬레이 여자 선수들. 왼쪽부터 은고지 오누메레, 세운 아디군, 아쿠오마 오메오가. 평창=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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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봅슬레이에선 나이지리아와 자메이카 선수들이 눈길을 모았다. 나무 썰매를 타면서 겨울올림픽 출전 꿈을 키웠던 나이지리아의 세언 아디군과 은고지 오누메레, 아쿠오마 오메오가는 선두에 7초15 차 밀린 최하위(2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은 눈조차 보기 힘든 나이지리아의 첫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로 기록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해했다. 아디군은 "우리는 나이지리아와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고 자평했다. 1988년 캘거리 대회 때 남자팀 이후 30년만에 봅슬레이에 처음 여자팀을 파견한 자메이카는 재즈민 펜라토르 빅토리안-캐리 러셀 조의 분투가 인상적이었다. 성적은 나이지리아보다 한 계단 위인 19위. 빅토리안은 "여기서부터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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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케냐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사브리나 시마더. 평창=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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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예선 경기에서 싱가포르 샤이엔 고가 트랙을 돌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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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스키에선 케냐의 사브리나 시마더가 자국 여자 선수론 처음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여자 수퍼대회전에서 38위에 올라 가능성을 남겼다. 시마더는 "세계의 많은 나라가 올림픽으로 이렇게 함께 하는 게 무척 즐겁다"고 말했다. 에리트레아는 남자 대회전에 섀넌 아베다가 출전해 출전 선수 85명 중 61위에 올랐고, 코소보의 알빈 타히리는 56위로 분전했다. 둘 다 조국의 첫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로 기록돼 의미있는 성적을 남겼다.

빙상에선 싱가포르의 샤이엔 고가 쇼트트랙 여자 1500m 예선에 출전해 싱가포르 첫 겨울올림픽 출전 기록을 세웠다. 예선 탈락했지만 샤이엔 고는 "싱가포르에 돌아가서도 훈련을 계속해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꼭 출전하겠다"고 말했다. 겨울올림픽 약소국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강원도의 '드림 프로그램'을 받았던 말레이시아 피겨스케이팅 남자 선수 줄리안 즈제 이(21)는 남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 25위에 그쳤지만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동계스포츠가 더 활성화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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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노르딕복합 라지힐 개인 10km 경기에서 한국 박제언이 결승선을 통과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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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첫 올림픽 종목에 도전한 설상 종목 선수들이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함께 겨루는 종목인 노르딕 복합에선 박제언(국군체육부대)이 빛나는 도전을 펼쳤다. 비록 노멀힐에서 47명 중 46위에 오른 데 이어 라지힐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지만 국내 유일의 노르딕 복합 선수로서 소중한 도전을 펼쳤다. 박제언은 "포기하지 않겠다. 평창이 끝나면 힘든 시간이 되겠지만 시작한 김에 열심히 해서 끝을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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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강원도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프리스타일 에어리얼 예선에서 한국 김경은이 점프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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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소피아가 17일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여자 4차 주행을 마친 후 미소짓고 있다. [평창=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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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에어리얼의 김경은도 '아름다운 꼴찌'로 남았다. 출전 선수 25명 중 최하위였지만 그는 "에어리얼 선수라는 자부심은 항상 갖는다. 1호라는 이름을 달고,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올림픽을 모국에서 했다. 나를 비롯해 후배들이 에어리얼 종목을 알아서 많이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스키점프의 유일한 여자 선수인 박규림(상지대관령고)도 최하위였지만 첫 올림픽 출전으로 족적을 남겼다. 여자 스켈레톤 15위에 오른 정소피아(강원연맹)는 "4년 뒤에는 '톱 3'를 노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열악한 환경에 첫 술부터 배부를 수 없지만 이들은 평창에서 굵직한 이정표를 세우고, 4년 뒤 더 빛나는 도전을 기약했다.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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