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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표절을 표절이라 말하지 못하고.. ‘우상연습생’에 속앓이하는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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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프로듀스 101’ 보셨어요?”

지난 한해 가장 히트한 예능프로그램은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이하 ‘프로듀스2’)였다. 중국의 동영상 사이트 아이치이에서 지난달 19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우상연습생>은 시청자들에게 ‘중국판 프로듀스 101’로 불린다. <우상연습생>의 프로그램 콘셉트와 연출 작법은 <프로듀스2>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

<프로듀스2>에서는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연예기획사 연습생 101명이 경합을 벌여 최종 11명이 데뷔했다. <우상연습생>도 100명의 연습생이 경합해 최종 10명이 데뷔한다. 두 프로그램에서 모두 연습생들은 개인별 카메라 테스트와 팀별 공연 미션 등을 하면서 점수를 얻는다. 미션 점수와 시청자 투표 점수를 합산해서 최종 데뷔조를 선정하는 방식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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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연습생>의 연출 작법은 <프로듀스2>와 세밀한 부분까지 똑같다. MC가 자신을 ‘국민 프로듀서 대표’라고 부르면서 연습생 멘토 역할을 하는 것, 연습생들을 A~F 등급으로 나누고 등급에 따라 다른 옷을 입히는 것 등이다. 가장 우수한 조 연습생들은 두 프로그램에서 모두 분홍색 옷을 입는다.

두 프로 모두 교복 입은 연습생들이 세모 형태의 움직이는 무대에서 단체로 프로그램 대표곡을 부른다. 프로그램 대표곡도 경쾌한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쓴다. 가사에 ‘픽미(pick me)’가 여러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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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청자들은 Mnet 채널을 소유한 CJ E&M이 아이치이에 프로그램 포맷을 팔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우상연습생>에 ‘중국판 프로듀스’ 또는 ‘중국판 프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매회 반복되는 제작 특성을 의미하는 포맷은 원작자에게 저작권이 인정되는 하나의 상품이다. 이 정도로 작법이 비슷하다면 포맷 정식 거래를 통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 MBC의 <일밤-아빠! 어디가?>나 <나는 가수다> 등도 중국 방송사에서 MBC로부터 포맷을 사가서 중국판을 만들었다.

아이치이는 CJ E&M으로부터 정식으로 포맷을 사가지 않은 상태에서 이처럼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당한 CJ E&M은 표절을 표절이라고 속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다.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우상연습생>은 <프로듀스 101>의 포맷을 정식으로 구매해 제작된 프로그램이 아닙니다”라며 “해당 프로그램 보도에 ‘중국의 프로듀스 101’이나 ‘중국판 프듀’ 등의 표현 자제를 부탁한다”는 뜻만 밝혔을 뿐이다. “법적대응을 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CJ E&M 측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묵묵부답하고 있다.

CJ E&M이 속앓이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표절로 문제제기를 할 수는 있으나 법적으로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국내에서는 재판을 통해 표절 여부를 따져볼 수 있으나, 중국은 국내와 법이 달라서 표절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한국 내에서 법적으로 프로그램 표절에 대해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중국 현지에서 인정이 될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고, 만약 된다고 하더라도 그를 단속의 수단으로 삼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까다로운 소송 절차만 거치고 표절한 측에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할 수 있다.

표절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시장성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점점 글로벌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은 잠재 고객이 많은 중요한 시장이다. CJ E&M 측이 표절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가 중국 시청자는 물론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게 ‘밉보이는’ 일이라도 생기면 다음 프로그램 포맷 판매나 사업 협력이 쉽지 않아질 수 있다. 박성현 고려대 한류융복합연구소 겸임연구원은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CJ E&M 측이 세게 대응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라며 “자칫 국가적인 마찰처럼 보이면 외교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이치이는 Mnet의 <쇼미더머니>를 연출을 그대로 베껴 <랩오브차이나>를 만들었으나, 이때도 CJ E&M 측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만약 <프로듀스2>의 프로그램 포맷을 중국의 다른 방송사나 제작사에서 사갔더라면 표절 제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중국 내 제작사끼리 표절 시비를 가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듀스2> 포맷을 정식으로 사간 중국 내 제작사가 없어서 문제제기가 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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