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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작은 거짓말로 사랑이 시작되고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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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봄이 왔다>


한겨레

사진 와우와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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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일본 드라마 <봄이 왔다>가 지난주부터 국내에서도 동시 방영을 시작했다. 카이의 훈훈한 얼굴을 정면에 내세운 파스텔톤 포스터나 화사한 제목을 보면 팬층에 노골적으로 소구하는 뻔한 로맨스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선 일본 최고의 극작가 중 하나인 무코다 구니코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하며 ‘믿고 보는’ 와우와우(WOWOW) 채널 드라마라는 점만으로도 일정한 완성도는 보증된다.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일하는 기시카와 나오코(구라시나 가나)는 의류 화보 촬영장에 지원 근무를 나갔다가 모델을 찍고 있는 젊은 남자(카이)의 눈빛에 매료당한다. 남자의 이름은 이지원, 일본에서 2년째 활동 중인 한국인 사진작가였다. 촬영 뒤 지원은 나오코에게 감사의 표시로 한식 레스토랑에 데려가 식사를 대접한다. 자존감이 낮고 소심한 나오코는 자신감 넘치면서도 다정한 지원 앞에서 저도 모르게 연신 거짓말을 꾸며낸다. 31살의 나이는 지원과 동갑인 26살로, 대화 없는 가족은 단란한 가정으로, 어둡고 초라한 집은 예쁜 정원이 있는 주택으로. 어쩌면 단순한 만남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는 나오코의 작은 거짓말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봄이 왔다>는 외로운 두 남녀가 만나는 전형적인 로맨스로 시작해서 인간 내면의 어두운 비밀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미스터리 휴먼 드라마다. 제목도 중의적이다. ‘봄’은 ‘그저 숨만 쉬며 매일을 보내던’ 주인공 나오코에게 찾아온 사랑과 삶의 빛을 의미하는 동시에 작가 무코다 구니코가 즐겨 다뤄왔던 ‘가족의 재생’이라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로맨스와 가족드라마의 플롯 역시 서로 연결된다. 지원과 나오코의 만남은 낯선 타국에서 쓸쓸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1인 가구와 붕괴하기 직전에 놓인 가족의 짐을 지고 있는 과잉 가구의 만남이기도 하다.

<봄이 왔다>의 또 다른 매력은 처음엔 대조적인 빛깔처럼 보였던 두 남녀의 삶이 차츰 비슷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색은 말하자면 차가운 겨울과 이른 봄의 경계색이다. 마치 나오코와 지원이 자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노을 길의 빛깔과도 가깝다. 어둠을 단숨에 밝히는 찬란한 빛은 아니지만 ‘추운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차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따뜻해지는’ 느낌의 빛이다. 처음 본 순간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지원의 모습에 반했다가 자신과 같은 어둠을 알고 난 뒤 변화하는 나오코의 감정을 은유하기도 한다.

아이돌 출신 배우의 첫 주연작에 가지게 되는 선입견과 달리 카이의 연기는 꽤 인상적이다. 동작 연기에서는 아직 어색함이 발견되나 중저음의 안정된 대사톤이 캐릭터와 잘 녹아든다. 남주인공의 탄탄한 복근을 집요하게 노출하는 ‘뜬금 샤워 신’처럼 팬 공략 화보집 같은 몇 장면을 참고 넘길 수 있다면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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