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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쌓을수록 세지는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 전쟁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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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와 인간을 삼킨다]②-1나날이 발전하는 AI기술의 원천 '데이터'…G2 '패권경쟁' 치열한데 韓 안일한 대처]

머니투데이

지난 9~12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박람회 'CES 2018'. 삼성전자가 선보인 AI(인공지능) 고화질 변환 TV는 AI와 빅데이터 전문가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이 제품은 AI 기술을 활용해 SD나 HD급 저해상도 영상을 UHD 4K보다도 4배 더 선명한 8K 초고해상도 화질로 변환해 보여준다. 영화나 TV 산업 초창기 제작된 저화질 영상을 수개월에 걸친 사전 보정작업 없이 이 TV에 전송하기만 하면 초고화질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저화질 영상이 입력되면 TV 스스로 밝기, 번짐, 선명도 등을 보정하는 최적의 필터를 찾아 고화질 영상으로 변환하는 AI 기술은 수백만 가지의 영상을 미리 분석하고 유형별로 분류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데이터의 힘이 곧 AI의 힘, 머신러닝과 딥러닝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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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크르자니치 인텔 CEO(최고경영자)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8'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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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CES에선 '데이터 파워'를 전면에 내건 기업이 적잖았다. 그중 하나가 인텔이다. 글로벌 반도체 제작사 인텔은 '데이터의 힘을 경험하라'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치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CES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서 "데이터가 미래 혁신을 이끄는 창조적 원동력"이라며 데이터 축적이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힘을 역설했다.

그의 기조연설 무대는 스마트 장갑을 활용한 연주회와 AI끼리 벌이는 즉흥 연주 배틀로 눈길을 끌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한 AI 기술의 향연이었다. 일찌감치 데이터의 힘을 내다보고 데이터 축적에 올인한 인텔이었기에 가능했던 장면이다.

아마존 '알렉사'와 구글의 '구글어시스턴트'가 글로벌 AI 음성인식 시장의 90% 이상을 잠식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 '빅스비'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는 이유 역시 데이터에 있다.

알렉사와 구글어시스턴트가 각각 아마존의 온라인 유통망에서 축적된 유통 데이터와 구글의 검색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빅스비에는 삼성전자가 글로벌시장에서 판매하는 막대한 전자제품의 사용패턴에서 쌓이는 데이터가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은 CES 기간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아마존이나 구글의 AI가 주목받지만 연간 5억대씩 팔리는 삼성전자 스마트기기에서 빅데이터가 쌓이고 여기에 AI 기능이 결합되면 훨씬 더 파워풀한 AI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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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데이터의 힘을 목격한 글로벌 시장에선 데이터센터 설립 경쟁이 한창이다. 구글·페이스북·아마존 같은 글로벌 IT기업이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공장 인근에 거점을 세우고 영업담당 직원을 상주시키면서 반도체 물량 확보전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물건을 만드는 쪽과 사는 쪽의 갑을 관계가 뒤바뀔 정도로 AI와 데이터 패권을 향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2016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메모리반도체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의 배경이다.

AI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전용칩 개발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인텔은 딥러닝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AI칩 개발사 너바나시스템즈를 인수한 뒤 페이스북과 손잡고 AI 지향 신경망 프로세서 개발에 착수했다.

중국 화웨이는 세계 첫 모바일용 AI 프로세서 '기린970'을 개발한 뒤 지난달 초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스마트시티 엑스포 월드콩그레스'에서 스마트시티 신경망 전략을 발표했다. 미국 IBM은 최근 대규모 연산작업을 요구하는 AI에 특화된 새로운 프로세서 '파워9'을 장착한 차세대 시스템 서버를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서울대, KAIST, 포스텍, 울산과학기술원 등 4개 대학과 손잡고 AI칩 개발에 뛰어들었다. 사람의 뇌를 닮은 뉴로모픽칩 개발이 목표다. 권오현 회장이 이끄는 종합기술원이 공동연구를 주도한다.

이런 시도와 별개로 AI칩 경쟁을 파운드리 사업(설계된 칩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분야)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파운드리 사업팀을 사업부로 승격시켜 분리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7월 파운드리 전문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를 출범시켰다.

컴퓨터칩 스타트업(신생벤처)도 AI·데이터 경쟁 특수를 누린다. 리서치회사 CB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시장에서 최소 45개의 스타트업이 자율주행차 등 AI 기술에 특화된 칩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중 최소 5개 기업이 1억달러 이상을 조달했다. 이런 신생기업에 투자된 자금이 지난해만 15억달러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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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데이터센서. /사진 출처=구글 한국 블로그


시장에선 우리의 대처가 안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부터 '소리 없는 데이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사이버보안법을 시행하면서 중국에서 이뤄지는 외국기업의 서비스를 검열, 통제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이 영업활동에서 수집한 상업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하는 것도 중국 정부의 허가를 거쳐야 한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미국인의 개인정보와 유전자 정보가 외국 정부나 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심사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며 맞대응하는 양상이다.

성사 직전까지 갔던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미국 송금업체 머니그램 인수가 이달 2일 무산된 데도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9일 CES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장 반도체가 많이 팔린다고 해서 즐거워하고만 있을 순 없다"며 "우리에게 반도체를 사간 기업들이 그 반도체를 활용해 AI와 데이터 시장에서 우리와 기술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말했다. 곱씹어볼 부분이다.

라스베이거스(미국)=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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