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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태권도 연맹은 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을까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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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국제태권도연맹 창시자 최홍희씨

박정희 정권과 갈등 뒤 캐나다 망명

남쪽 WTF, 북쪽 ITF로 연맹 갈라져

남 스포츠 요소 강하고 북 실전성이 특징

영화 ‘베를린’ 마지막 격투신이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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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세계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시범을 선보이고 있는 ITF 북한 태권도시범단.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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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남과 북이 2년 1개월 만에 마주 앉았습니다. 남과 북은 회담 개시 10시간 만에 공동보도문 문안에 합의했죠. 평창올림픽 문제는 시작부터 시원시원했습니다. 북한은 선수단 외에도 태권도 시범단과 응원단·예술단·참관단·기자단 등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특히 태권도 시범단 파견 관련해 언론들은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이 주도하는 두 태권도단체의 합동 시범공연이 성사된다면 지구촌에서 남북 화해의 모습을 보여주는 매우 감동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죠. (▶관련 기사: 한반도기 들고 공동입장…남북 ‘평화의 평창’ 연다)

태권도 시범단 기사를 보다보면 ‘남북이 주도하는 두 태권도 단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세계태권도연맹(WTF)과 국제태권도연맹(ITF)이라는 유사한 연맹도 두 곳 등장하고요. 태권도는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스포츠입니다. 왜 남북은 이런 태권도마저 둘로 나뉘어 있는 걸까요?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같은듯 다른 남과 북의 태권도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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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초대 총재.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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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과 북 태권도의 시작은 모두 최홍희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는 원래 뿌리가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과 남한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으로 나눠져 있죠. 이렇게 갈라진 태권도 역사의 중심에는 최홍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육군소장 출신이었던 최홍희(2002년 작고) 씨는 1966년 서울에서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했습니다. 한국·베트남·말레이시아·미국 등 9개 국가를 가입국으로 해서 시작했죠. 총재는 최홍희 씨였습니다. 1년 동안 연맹 가입국의 수는 꾸준히 늘어 40개국이 연맹에 참여했죠. 그러던 중 최홍희 씨는 당시 박정희 정권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갈등을 빚었고, 결국 1972년 캐나다로 망명을 떠나게 됐습니다. 최씨가 떠난 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8월 외교부에 근무하던 김운용(전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씨를 중심으로 세계태권도연맹(WTF·현재 회원국 208개)을 결성했습니다.

캐나다로 망명한 최씨는 북한 쪽과 인연을 맺습니다. 1979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에게 태권도를 설명하는 한편, 평양으로 사범들도 꾸준히 보냈죠. 이렇게 최홍희의 국제태권도연맹은 북한이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두 갈래로 갈라져 세계태권도연맹과 각을 세웠던 국제태권도연맹은, 북한의 전폭적인 지지로 세계 100여 개국에 35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스포츠 조직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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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훈(오른쪽)이 지난해 12월 3일(현지시각) 열린 2017 월드 태권도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68㎏ 이하급 결승에서 알렉세이 데니센코한테 발차기 공격을 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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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요소가 강한 남한…실전성이 강한 북한

가장 최근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한국을 방문한 건 지난해 6월입니다. 전북 무주에서 2017 세계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이 열렸는데, 세계태권도연맹이 북한 시범단을 초청했고 북한이 이에 응해 초청 공연이 이뤄진 겁니다.(▶관련 기사: 한뿌리였던 남-북 태권도연맹, 교류촉진 하이킥?) 북한 시범단의 공연을 자주 볼 수 없는 탓에 당시 언론도 집중 보도했습니다. 관심사는 떨어져 지낸 시간 만큼 남북 태권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였죠.



WTF 시범단의 공연은 화려한 퍼포먼스 위주로 구성해 태권도 동작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음악과 조명을 활용하고, K팝 안무를 접목해 젊은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려 애쓰는 게 특징이다. 기술은 고난이도 위주다. 540도 회전킥과 5연속 발차기, 2단 고공 점프 등을 연결해 주목도를 극대화한다.

상대적으로 ITF 시범단은 묵직하다. 발차기 위주의 타격기로 진화한 태권도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공연 구성의 초점을 맞췄다. 격파, 낙법, 호신술 등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보여준다. 동작은 화려하지 않지만 절도가 느껴지고 파워가 넘친다. 상의를 탈의한 시범단원들이 팔과 다리 몸통으로 각목 타격을 버텨내는 장면은 ITF 태권도 시범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ITF 시범단의 공연에 대해 차력쇼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 2017년 7월4일<중앙일보>, 평창올림픽 수놓을 남-북한 태권도 시범, 이렇게 다르다



‘WTF 태권도는 스포츠적 요소가 강하고, ITF 태권도는 실전성이 두드러진다’. 두 연맹의 태권도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외형상으로만 보자면, WTF 태권도는 발차기 위주인 반면, ITF 태권도는 발차기 못지 않게 주먹 기술이 발달해 있습니다. WTF는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게 허용되지 않지만, ITF는 가능합니다. ITF는 WTF 태권도에는 없는 팔꿈치 공격도 많습니다. ITF 태권도가 ‘실전용’이라는 평을 받는 이유는 이 같은 차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 ITF 태권도는 북한군의 무술인 격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죠. 영화 <베를린> 마지막 장면에서 표종성(하정우)과 동명수(류승범)의 대결 장면을 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영상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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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소개한 북한 태권도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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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연맹의 태권도는 규칙도 차이가 납니다. WTF 태권도는 머리와 몸통에 호구를 착용하고 맨발로 겨루기를 하는 반면, ITF 태권도는 보호대 없이 장갑과 신발을 착용하고 맞서기를 합니다. 현재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는 WTF 태권도 입니다. 규칙이 다르다보니,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북한이 태권도에 출전한 적은 없습니다.

■ WTF와 ITF는 통합할 수 있을까?

두 태권도 연맹의 통합 논의는 1980년대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WTF가 태권도 국제기구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승인을 받게 되자, ‘태권도의 창시자’인 최홍희 ITF 총재가 처음 제안을 한 것이죠. 하지만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국제스포츠무대에서의 반복 등으로 성과는 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영향으로 2007년 ‘남북태권도통합조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의 태권도 교류가 다시 단절됐죠.

“아시다시피 태권도는 하나다. 하나의 뿌리에서 자라난 태권도가 본의 아니게 둘로 갈라져 성장해 덩치가 커졌다. 하나로 합쳐지면 더 큰 하나가 될 것이다. 단 하루라도 빨리 하나로 만들기 위해 손에 손잡고 나갑시다.”

지난해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시범단으로 초청받은 리용선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주 대회를 계기로 남북 간의 태권도 통합 논의에 다시 시동이 걸린 셈입니다. 남북고위급 회담을 기점으로 남북 관계도 해빙기에 접어들어 이 통합 논의는 급물살을 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천년 전 신라의 무풍과 백제의 주계로 나뉘었던 땅이 합쳐져 무주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무주에서 신라와 백제가 하나가 되었듯이, 오늘 이곳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F)과 국제태권도연맹(ITF)이 하나가 되고, 남북이 하나가 되고 세계가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 2017 세계태권도연맹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 문재인 대통령 축사



문재인 대통령의 세계선수권대회 개막식 축사입니다. 두 연맹이 하나 되고, 남북이 하나되는 때는 곧 올 수 있을까요?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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