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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7일간의 다큐 여행…열악한 제작환경 바꾸는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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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14회 EBS 국제다큐영화제 21일 개막

TV서 하루 9시간씩 45편 방영

“평소에도 편성 확대 제도화를”

교육·여성 등 다양한 주제에

모바일 단편·가상현실 특별전

“플랫폼 변화에 발맞출 필요”

틸다 스윈턴 등 유명배우 참여

“다큐 대중화 위한 노력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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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에스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와이 우먼>.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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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립 다큐멘터리 피디 두명이 국외촬영 중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방송사가 제작비 일부를 떼어가는 부조리한 관행이 그들을 강행군으로 내몰았다. 좀 더 들여다보면 제작비 부족 등 다큐멘터리가 홀대받는 열악한 시장이 근본 원인이다. 두 피디의 죽음을 계기로,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21일 ‘제14회 이비에스(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이하 ‘이아이디에프’)가 시작된다. 다큐멘터리 피디를 상대로 한 ‘갑질’ 논란의 중심에 <교육방송>이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이 영화제는 전세계에서 만든 좋은 다큐멘터리를 티브이와 극장에서 동시에 선보이는 오래된 축제다. 27일까지 킨텍스와 아트하우스 모모 등 경기 고양시 일원과 서울에서 열린다. ‘이아이디에프’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과제 등을 짚어봤다.

■ 하루 9시간 다큐만 튼다 다큐멘터리 관계자들은 “다큐멘터리가 대중화되려면 스킨십이 잦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티브이와 영화관 등에서 더 자주, 더 빈번하게 접할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편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지상파 편성비율은 보도, 교양(다큐멘터리 포함), 오락(드라마 포함)으로 나뉘는데, 오락 부문 편성을 전체의 5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만 있을 뿐 교양 부문 등의 의무편성 규정은 없다. 한 지상파 다큐멘터리 피디는 “방송사가 힘들어지면서 가장 먼저 없애는 게 상대적으로 수익이 적은 대작 다큐멘터리들”이라며 “다큐멘터리 제작은 사회적 의미와 내용의 가치를 봐서라도 일정한 편성 비율을 두고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14년째 계속되는 ‘이아이디에프’의 파격적인 시도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영화제 기간 동안 하루 9시간씩 다큐멘터리만 방영한다. 올해도 상영작으로 선정된 24개국 70편 중에서 티브이 공개를 꺼린 작품을 제외하고 45편을 티브이로 내보낸다. 1주일 동안 매일 9시간씩 내보내는 것은 방송사가 웬만한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시도다. 2004년 처음 시도할 당시 내부적으로도 우려는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를 대중화하려면 티브이 방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교육방송> 관계자는 “의외로 다큐멘터리에 목말랐던 시청자가 많았고, 서서히 시청률도 올라가는 등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은정 집행위원장은 “티브이와 극장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영화제”라며 “이를 통해 한국 다큐멘터리를 전세계에 소개하는 역할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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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에스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나의 시, 나의 도시>.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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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 차별화된 시도의 중요성 티브이 다큐멘터리는 한류 열풍과 방송사 경영난 등으로 주제가 보편화되고 있다. 국외시장 판매라는 목적 때문에 실험과 도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아이디에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런 한국의 현실을 곱씹게 한다. 교육 등 보편적인 주제도 담지만 분쟁, 난민 등 매년 섹션별로 차별화된 작품을 선보인다. 올해는 경쟁 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를 비롯해 ‘한국 다큐멘터리 파노라마’, ‘월드 쇼케이스’, ‘아시아의 오늘’, ‘이아이디에프 포커스’ 기존 5개 섹션에 ‘내 손안의 다큐?모바일 단편 경쟁’, ‘브이아르(VR·가상현실) 다큐 특별전’을 신설했다.

특히 올해 ‘이아이디에프 포커스’에서는 여성 문제를 강조한다. 여성의 주체적인 삶 등에 집중하는 익숙한 다큐멘터리와는 다르다. 타고난 모성이라는 전형이 있는가를 질문하는 논쟁적 작품 <아마조나>, 매매혼, 모성 보건 등 여성 문제를 애니메이션 등의 기법으로 보여주는 단편 모음 <와이 우먼>, 1955~1985년 캐나다 정부가 시행한 강제입양 프로그램 탓에 아이들을 뺏긴 어머니와 아이들의 이야기 <가족의 탄생>은 여성의 존재 자체에 주목한다.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도 강화했다. 개막작도 청소년들이 문학과 음악, 미술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나의 시, 나의 도시>(찰스 오피서 감독)다. <바람> 등 브이아르를 활용한 다큐멘터리와 <소년 304 교신일지> 등 모바일 단편작 등 플랫폼의 변화에 발맞춘 실험적인 작품도 늘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삶과 예술을 담은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지난해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를 만날 수 있는 <데이빗 보위: 지기 스타더스트 마지막 날들> 등 유명한 인물을 등장시킨 작품들은 다큐멘터리를 친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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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틸다 스윈턴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바그다드에서 온 편지>. 교육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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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틸다 스윈턴까지…누구나 다큐를 만든다 지상파 다큐멘터리 피디는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영화, 드라마와 달리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하지만 눈을 돌려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등 다큐멘터리는 대중적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이아이디에프’에도 2~3년 전부터 세계적인 거장들의 출품이 늘었다. 올해는 갑절 이상으로 많다. ‘2016년 베네치아(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클래식 상을 받은 클레르 시몽의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 전쟁>, 신예 감독으로 떠오른 얀 쿠넹의 <베이프 웨이브>, 컴필레이션 필름의 대가 빌 모리슨의 신작 <도슨 시티: 얼어붙은 시간>, ‘2017년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소개됐던 아모스 기타이의 신작 <서안 지구 비망록> 등이 벌써부터 화제를 모은다. 유명 배우들도 다큐멘터리 제작에 적극적이다. 영화 <설국열차>로 유명한 틸다 스윈턴은 <바그다드에서 온 편지>에서 프로듀서와 내레이터를 맡았고, 헬렌 미렌은 단편 모음 <와이 우먼>에 참여했다. 김시준 사무국장은 “유명 감독과 유명 배우의 참여는 다큐멘터리는 어렵다는 인식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파 피디는 “다큐멘터리를 대중화하려는 전세계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부럽다”며 “‘이아이디에프’를 한국 다큐의 현실에 눈을 뜨는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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