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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A-POINT] '나가면 그만'이라던 슈틸리케의 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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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

[인터풋볼] 유지선 기자= 대한축구협회와 울리 슈틸리케 감독 모두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외쳤지만, 결말은 협회와 슈틸리케 감독, 한국 축구 모두의 '새드 엔딩'이었다. '나는 떠나면 그만'이라던 슈틸리케 감독의 멘트가 맴돌아 더 씁쓸하다.

대한축구협회가 15일 오후 2시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카타르 원정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하고 돌아온 한국 축구 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슈틸리케의 33개월, '갓틸리케'에서 '수틀리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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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이 역대 최장수 감독이란 타이틀을 뒤로 하고, 996일 만에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2014년 9월 24일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뒤 외국인 지도자 선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번만큼은 충분한 시간을 주고 믿어보자'는 분위기도 조성돼 있었다.

새로운 선장이 키를 잡은 슈틸리케호의 초반 항해는 순조로웠다. 2015년 1월 아시안컵 준우승이란 값진 성과를 이뤄냈고, 그해 8월에는 동아시안컵 대회에서 우승컵을 안겨줬다.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는 8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최다 무실점 기록을 새로 쓰기도 했다. 축구 팬들도 어수선한 상황을 수습하고 결과를 챙겨 돌아온 슈틸리케 감독에게 '갓틸리케'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극찬을 보냈다.

그러나 최종예선 무대에 들어서면서 '무실점'이란 달콤함 속에 감춰져있던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이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이어졌고, 부진한 흐름이 계속되자 '소리아 발언' 등 말실수도 빈번해졌다. 팬심도 덩달아 싸늘하게 식었다. '갓틸리케'라 치켜세우던 목소리가 '수틀리케'라는 조롱 섞인 목소리로 바뀐 것이다.

# '장악력 부족+얇은 귀' 슈틸리케의 치명적 약점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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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감독이 팬심을 잃은 데에는 전술적 능력 부족과 소통 부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선수단 장악력 부족과 얇은 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표팀은 최근 분위기가 굉장히 어수선해졌다. 한 지도자는 "현 대표팀에서는 과거 한국 대표팀 특유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해이해진 정신력 문제는 구자철과 기성용 등 일부 고참 선수들이 직접 선수들의 안일한 태도에 일침을 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논란이 한두 달에 그친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4월 답답한 마음에 유럽으로 직접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던 선수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상처는 이미 곪아터진 뒤였다. 새 출발을 다짐했지만, 이번 카타르 원정에서도 이근호 등 선수들의 입에서 정신력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독으로서 선수단 내부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재빨리 대처하지 못한 셈이다. 선수단 분위기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밖에까지 끌고 나와야 했다는 것만으로도 슈틸리케 감독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한 언행도 슈틸리케 감독의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해 이란 원정에서 패한 뒤 "한국에는 소리아 같은 선수가 없었다"고 한 발언이 도마에 올랐고, 지난 3월 중국에 패한 뒤에는 전술이나 선수단 구성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어떤 전술을 사용했어야 했는지 묻고 싶다"고 되물으며 뭇매를 맞았다.

최종예선 무대에서 민낯이 드러났고, 극찬이 비난으로 바뀌면서 슈틸리케 감독이 언론 및 여론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거스 히딩크 감독이 '오대영'이란 굴욕적인 별명과 비난의 화살 속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에만 집중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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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장에서 한국말로 직접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던 슈틸리케 감독, 그러나 풍파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 안일함으로 '골든타임' 놓친 한국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이 확정되면서 "나는 내일이라도 나가면 그만"이라던 그의 발언이 머릿속을 맴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이란 원정에서 돌아와 "감독을 교체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나는 내일이라도 나가면 그만이다"라며 감독 교체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힘 주어 말했다. 감독으로서 무책임한 발언이기도 했지만, 아픈 현실을 콕 짚은 한마디이기도 했다.

이제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협회는 지난 3월 중국 원정에서 패한 뒤에도 기술위원회를 열고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여부를 논의했다. 다음 경기(카타르 원정)까지 3개월이란 시간이 있었고, 더 이상 여유부릴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이 거세진 것이다.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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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과거에도 선수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월드컵에 진출했던 저력을 믿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며 재신임을 선택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호소하며 카타르 원정길에 올랐다. 하지만 한 번 더 믿고 간 결과는 처참했다. A조 최약체로 평가받던 카타르에 33년 만에 뼈아픈 패배를 당한 것이다. 결과는 물론, 내용까지 처참했다. "과거에도 위기를 잘 이겨냈다"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말은 결과적으로 과거의 영광에 기댄 '안일한 발언'이 되고 말았다.

# 어수선한 분위기, '선수단 장악'할 지도자 절실

이제 본선행을 위해 남은 기회는 두 번뿐이다. 한 경기라도 미끄러진다면 본선 직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까다로운 상대인 이란(홈)과 우즈베키스탄(원정)을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우즈벡은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는 중국과 9차전 경기를 치른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처럼 '여전히 2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남은 대진을 고려했을 때 불리한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 정해성 감독 대행 체제를 비롯해 신태용 감독,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최용수 감독 등 다수의 인물이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이다. 팀 내 곪아 있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이해진 정신력을 새롭게 무장시킬 강인한 성향의 감독이 필요하다.

8월 31일 이란전까지 남은 시간은 2개월 반 남짓, 골든타임을 놓친 한국 대표팀이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슈틸리케호의 항해는 멈춰 섰지만, 한국 축구는 더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할 시점이다. 누구 하나라도 방심해 노를 놓친다면, 배는 가라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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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경식 기자,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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