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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베이스볼 라운지]도핑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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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니 페랄타는 이른바 공격형 유격수였다. 풀타임 유격수가 된 2005년부터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렸다. 수비력은 조금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파워는 인정받았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을 때 페랄타의 공격력과 종종 비교되곤 했다.

2013시즌 중반 메이저리그를 강타한 바이오제네시스 도핑 스캔들에 포함됐다. 페랄타는 5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정규시즌에는 뛰지 못했지만 포스트시즌 10경기에서 타율 3할3푼3리, 1홈런, 6타점으로 활약했다.

페랄타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다. 약물복용 전력에도 불구하고 유격수의 공격력이 절실했던 세인트루이스가 손을 내밀었다. 4년 5300만달러.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팀 모토가 ‘옳은 일을 하라’였던 세인트루이스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눈을 딱 감았다. 단장, 감독, 동료 모두 “페랄타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페랄타가 2014년 때린 홈런 21개는 세인트루이스 유격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지난 19일 피츠버그 외야수 스탈링 마르테가 근육강화제의 일종인 난드롤론을 복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8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마르테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 중이었다. 팀 내 최고 스타인 앤드루 매커친을 올 시즌 좌익수로 밀어내고 주전 중견수가 됐다. 스피드와 파워, 수비력과 송구능력 뭐 하나 떨어질 것 없는 만능 플레이어다. 한 시즌 평균 홈런 16개를 때리면서 도루 43개를 하는 선수다. 그 모든 기록이 금지약물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르테는 2013년 데뷔 2년차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6년 3100만달러에 장기계약 했다. 이후 2년간 구단 보유 옵션을 고려하면 2021년까지 사실상 계약이 보장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약물에 손을 댔다. ESPN의 표현에 따르면 ‘도핑 규정,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ESPN은 최근 수년간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들의 징계 이듬해 성적을 분석했다. 유명 성적 예측 프로그램인 PECOTA의 예상과 실제 성적을 비교해보니 타자들의 예상 OPS는 0.726이었으나 실제 0.745를 기록했다. 투수들의 예상 WAR 합계는 2.8이었지만 실제는 무려 9를 기록했다. 금지약물 효과의 유효기간은 차치하더라도 도핑 자체가 잃을 게 없는 게임이다. 도핑 징계를 받더라도 이듬해 성적이 떨어지기는커녕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자니 페랄타 이후 구단들은 도핑 전력 선수라고 해서 계약을 차별하지 않는다.

다저스에서 류현진과 함께 뛸 때 국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디 고든은 2015년 마이애미로 트레이드 된 뒤 205안타로 내셔널리그 최다안타왕에 올랐다. 곧 마이애미와 5년 5000만달러 계약에 성공했다. 이듬해 초 금지약물인 테스토스테론, 클레스테볼 복용 사실이 적발됐다. 80경기 징계를 받았지만 고든이 잃은 것은 크지 않다. 이미 장기계약에 성공했다. 징계 이듬해 시즌인 올해 타율 2할9푼3리. 출발이 나쁘지 않다. 지난해 말 호세 페르난데스를 추모하는 눈물의 홈런은 고든을 다시 사랑스러운 선수로 만들어주는 데 충분했다.

도핑의 유혹이 강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걸렸을 때 위험도는 낮고, 안 걸렸을 때의 인센티브는 계산이 힘들 정도로 크다. ESPN은 ‘도핑을 막기 위해 팬과 동료들이 모두 해당 선수를 왕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제적 인센티브를 도덕적 인센티브로 환원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도핑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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