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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젠더문제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은데 실제 방송에 나간 것은 빙산의 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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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5금 토크쇼 ‘까칠남녀’의 김민지·이대경 PD

경향신문

<까칠남녀>의 이대경 PD(왼쪽)와 김민지 PD가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EBS 사옥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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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털’ ‘피임’ ‘졸혼’ ‘김치녀’….

지난달 27일 첫 전파를 탄 EBS 1TV <까칠남녀>가 지난 16일까지 본방송에서 다뤄온 소재다. ‘프로불편러’(작은 것에도 불편해하고 문제 제기하는 사람)의 ‘까칠’한 젠더 토크쇼를 표방하는 15금 <까칠남녀>는 1화부터 시청자들의 이목을 모았다. 박미선, 서유리, 은하선, 봉만대, 서민 등 개성파 패널들이 모여 젠더, 성차별 등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녀 패널들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반되는 의견을 내놓아 부딪치고, 때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긍하며 접점을 찾아간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EBS 본사 1층에서 <까칠남녀> 김민지·이대경 PD를 만나 프로그램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이 <까칠남녀>를 기획하게 된 것은 2016년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계기가 됐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그간 물밑에 있던 남녀 차별, 미소지니(misogyny·여성혐오) 등 젠더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별 대립, 혐오 논쟁 등은 소모적인 싸움으로 번지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 간에 골이 커져갈 뿐이었다.

김 PD는 “현재 인터넷상의 남녀 혐오 논쟁은 심각한 수위로 이런 대부분의 혐오가 서로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며 “민감한 이슈에 대한 ‘솔직하고 거침없는’ 토크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의 토크쇼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그간 <까칠남녀>가 다뤄온 소재들은 일상에 밀접하면서도 자주 논쟁의 주제가 되는 ‘핫한’ 이슈였다. 그러나 일상에서 마음 터놓고 생각을 나누기엔 힘든 주제이기도 했다.

이 PD는 “평소 젠더나 성차별 관련 문제에 대해선 심지어 연인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길까봐 쉽게 말을 못 꺼내는 측면이 있다”며 “프로그램이 나가고 나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는 반응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제모를 다뤘던 1화 이후 “아무 생각 없이 제모를 했는데 내가 남의 시선을 신경쓴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는 여성 시청자가 있었고, 한 남성 시청자는 피임을 다룬 2화를 보고 “여성의 임신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까칠남녀>에는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담기 위해 스튜디오 토크뿐 아니라 매회 주제에 맞는 사연의 주인공을 섭외해 이야기를 듣는 코너도 있다. 사연의 주인공들을 통해 ‘겨털(겨드랑이털)을 기르는 여성’ ‘남성용 피임약 먹기 싫어하는 남성’ 등이 방송에 등장했다.

섭외의 어려움을 묻자 김 PD는 “의외로 쉽게 섭외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고를 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해 기꺼이 나섰다”며 “안 좋은 점을 부각시킨다기보단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은하선, 봉만대 등 소위 ‘센’ 패널들이 모였는데 토크의 ‘수위’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 PD는 “녹화 분량 가운데 심의 때문에 방송에 나가지 못한 ‘B컷’ 중 훨씬 더 수위가 높고 적나라한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방송에 나간 이야기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김 PD는 “보통 한 시간 정도 방송이 나가면 3~4시간 정도 촬영을 한다”며 “그런데 중간에 휴식시간에도 패널들이 쉬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하더라. 정말 ‘할 말이 많았구나’란 생각이 든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까칠남녀>가 EBS 프로그램임에도 최대한 ‘교육색’ ‘강좌식 전달’을 덜어내고 파격적인 스튜디오 토크 형식을 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PD는 “수업에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교육일 수 있지만 문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고, 부딪쳐 보는 것 역시 충분히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젠더, 성차별 문제를 바라보는 남녀 간 시선의 온도차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다. 이 PD는 “남성들은 젠더, 성차별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경험이 없어 상대적으로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편”이라며 “위로 누나가 셋이라 어려서부터 여성의 진솔한 삶과 목소리를 근거리에서 접할 수 있었다. <까칠남녀>가 혹자에게, 내게 있어 ‘우리 누나들’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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