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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고교투수 혹사 논쟁 2라운드,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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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지는가, 아니면 더 닳아지는가'.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이같은 논쟁이 야구판에서 번지고 있다. 고교투수들의 혹사 시비에 한 정치인이 뛰어들어 불씨를 지핀 것이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지난 23일 '고교야구 투수 혹사의혹 등에 대한 직권조사 및 문제점에 대한 시정 권고'라는 제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서의 요지는 '고교 야구대회에서 특정 투수가 짧은 기간 동안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무리하게 많은 투구를 해 혹사당했다.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고교 시절의 무리한 투구로 인해 나중에 그 후유증으로 선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교 야구 투수들의 혹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위야 어찌됐든 이같은 문제가 야구인들의 손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됐다는 것에 대해 일부 야구인들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투수들의 혹사 문제를 야구인 또는 아마야구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야구협회(이하 야구협회) 등 야구계가 그 동안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간헐적으로 문제가 불거졌어도 야구협회가 뒷짐지고 예방책을 내놓지 못한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기왕 이같은 논쟁이 재론된 참에 야구계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

논쟁의 핵심은 하나다. '자라나고 있는 어린 야구선수들(그 가운데서도 투수)을 한 경기에서 지나치게-이 부분이 논란거리다-또는 연일 연투시키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선수 생명에 위협을 줄 만큼 혹사시키는 일인가'하는 것이다.

야구협회는 과거 선수보호 차원의 투구제한 조치를 내린 적이 있다. 이번 일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 야구협회 이상현 사무국장이 당시 고교 감독들을 수소문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1985년부터 87년까지 3년간 고교 투수들에게 7이닝 투구제한 조치를 시행했다(야구협회에 이같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없다) . 투구수 제한이 아니었고, 만약 7이닝을 넘어 공 한 개라도 더 던지면 다음 경기에 등판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는 성적 부진에 따른 고교 감독들의 해임 사태를 몰고 왔고 결국 일선 지도자들의 반발로 흐지부지돼 버렸다. 다만 야구협회는 올해 4월 3일 상임집행위원회를 열고 오는 9월에 열리는 KBO 총재배 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에 한해 한 투수가 3이닝을 초과해서 던지지 못하도록 제한 규정을 마련했다. 야구협회는 이 조치를 2007년부터는 모든 초등학교 대회에 확대적용할 방침이다.

고교 투수들에게 투구수나 이닝 제한을 두는 것이 선수보호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인가.

일부 야구인들은 이 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 까닭으로 승부를 가리는 게 스포츠 정신이라는 것을 첫 손에 꼽는다. 더 큰 쟁점은 야구가 기록경기라는 것이다. 만약 투구수나 이닝에 제한을 둘 경우 투수 기록 가운데 완투나 완봉승의 의미가 없어진다.

비록 학생 야구이지만 학생 당사자나 학부모, 학교가 대학 진학이나 프로 진출에 목말라 하고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약간의 무리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도 내세운다. 지도자가 믿을 수 있는 유망주를 집중적으로 기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더욱이 야구 본고장인 미국이나 고교야구팀이 5000여 개나 되는 일본도 고교 투수들의 투구수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도 든다.

야구인들의 일각에서는 이 문제는 인권위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양식과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소리도 내고 있다. 하지만 여태껏 내버려둔 일을 이제와서 야구인들이 자율 운운하는 자체에 대해 뜻 있는 이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고교 투수들의 혹사 논쟁은 제도적인 맹점의 연장선상에도 놓여 있다. 대학 진학을 위한 체육특기자 4강 특례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일선 대학에서는 전국대회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학교 선수들을 우선시 하는 마당에 마냥 ‘성적 무시, 선수 보호’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전국 단위의 고교야구대회가 너무 많은 것도 선수 혹사에 부채질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와 관련, 야구협회는 대회를 주최하는 언론사를 상대로 격년제 대회 개최 등으로 조절에 나섰으나 이해관계에 얽혀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에는 지역단위의 대회는 많이 있으나 전국 대회는 봄철과 여름철 고시엔대회밖에 없다. 우리는 전국대회가 서울무대 4(대통령배, 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지방무대 4(화랑기, 대붕기, 무등기, 미추홀기) 등과 전국체육대회를 포함하면 모두 9개 대회나 된다. 지난 3월에 열렸던 야구월드컵(WBC)에서 처럼 투구수 제한 조치 등을 과연 성인야구(프로야구)와는 격이 다른 고교야구 무대에 적용해야 할까.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chuam@osen.co.kr

<사진> 지난해 3월 열린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대회 대표자 회의에 참가한 고교야구팀 감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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