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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류복성 “재즈 대중화 위해 60년째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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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재즈페스티벌 총감독 맡아

“클럽 공연하면 일당 3만~5만원

이 황무지서 라면만 13년 먹어

그래도 재즈처럼 인생 살고 싶다”

일흔여섯 나이의 뮤지션의 첫 마디는 불같았다. “열 받아, 약 올라!” 인터뷰 장소인 서울 순화동 본사 스튜디오를 못 찾아 인근을 자동차로 몇 바퀴 돈 게 불씨가 됐다. 무엇보다 내년이면 데뷔 60주년인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재즈의 길”이 그의 약을 바짝 올린다고 했다. 24일 만난 재즈 타악계의 거장 류복성의 기세는 청년 못지 않았다. 그는 다음달 12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재즈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 기획부터 출연자 섭외, 음악감독, 무대연출까지 오롯이 혼자서 하고 있다. 국내 재즈뮤지션들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서 나선 고행길이다.
중앙일보

류복성은 “60년쯤 하니 재즈를 좀 알겠다. 내 전성기는 지금”이라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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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모르는 사람들에게 재즈를 알리는 게 내 의무야. ‘자유의 음악’ 재즈는 클래식과 함께 세계를 정복했으니까. 으하하하.”

그런 재즈가 류복성이 발 딛고 있는 한국에서만큼은 실력 발휘를 못 하고 있다. “재즈 대중화를 위한 전쟁 중”이라며 군복 바지만 줄기차게 입고다녔던 그다. 그는 “주한미군방송(AFKN)을 통해 재즈를 알게 됐으니, 한국전쟁 통에 재즈가 국내 상륙한 것”이라고 말했다. 첫 데뷔무대도 미8군에서였다. 1958년 17세의 나이에 재즈 드러머로 출발한 그의 연주 인생은 이봉조 악단(61년), 길옥윤 재즈올스타즈(66년) 등을 거치며 다져졌다. 70년대 초반 MBC 드라마 ‘수사반장’ 테마 리듬인 ‘빠바바바밤 빠바바밤’도 그의 봉고 연주가 바탕이 돼 완성됐다. 그 덕에 TV 출연도 많이 했고, 대중적 인지도도 쌓았다. 숱한 악기 중에서도 타악기에 홀딱 빠진 이유를 아직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무당기가 있어서 그런지, 중학교 2학년 때 공부하기 싫어서 밴드에 들어갔어요. 무대에 올라갔는데 눈에서 불이 튀어나오잖아. 그 이후로 재즈에만 미쳐 이렇게 고생했으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변함없이 하겠지. 인생을 재즈처럼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악한 공연 환경도 그의 화를 돋운다. 재즈 클럽에서 공연하면 일당 3만~5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 무대조차도 부족한 실정이라고도 했다.

“이 황무지에서 여태 살아 음악 한다는 게 내 스스로 기특해요. 라면만 13년 먹었으니 전쟁 맞아요. 재즈 음악과의 전쟁.”

대한민국 재즈페스티벌은 올해로 3회를 맞는다. 첫 회는 92년 열렸다. 류복성은 당시에도 총감독을 맡았다. 2회는 23년만인 지난해에서야 다시 열렸다. 그는 “20년 넘게 명맥이 끊겼던 페스티벌을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살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공연의 사회는 배우 문정희씨가 맡았다. 사자 밴드, 찰리정 밴드, 한상원 펑크 밴드 등이 출연한다. 남무성 음악평론가는 “과거에 비해 놀랍게 발전한 음악적 수준에도 침체기를 맡고 있는 한국재즈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원로 뮤지션의 열정과 응원이 그대로 서려있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은화.권혁재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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