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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이은혜의 풋볼프리즘] 계륵이 된 루니, 결단 앞에 선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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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루니는 한때 유럽 축구계를 주름 잡았던 공격수다. 하지만 루니를 거론할 때 '계륵'이라는 의미의 표현들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년이 넘는다. 2015/16 시즌 말부터 급격히 기량 저하를 보인 루니의 '폼'은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사령탑이 루이스 반 할 감독에서 주제 무리뉴로 교체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팬들이 먼저 인내심을 잃었고, 루니를 팀 전력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여론은 빠르게 확산됐다. 2016/17 시즌부터 지휘봉을 잡은 주제 무리뉴 감독은 "그래도 루니다"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하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리 시간으로 24일 자정 킥오프한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경기에서 맨유는 굴욕적인 대패를 기록했다. 첼시의 홈인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치러진 이 날 경기에서 전임 첼시 감독이기도 한 주제 무리뉴는 친정팀에 당한 4-0 대패 앞에서 '사과' 말고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가장 강한 감독은 나다. 나 이상으로 스탬포드 브리지에서 승리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했던 무리뉴다. 실제로 첼시에서 두 번이나 감독직을 수행했던 무리뉴는 역사상 최다 승점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일까지 있다. 그는 한때 런던에서 가장 잘 '이기는' 감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첼시 시대를 마감하고 맨체스터로 둥지를 옮긴 무리뉴 감독은 이번에도 승리를 자신했다. 최근 팀 전력이 부진과 기복을 반복하고 있는 맨유로서는 첼시 원정에서 연승 가도에 올라서면 팀 분위기 전체에도 큰 '반전 효과'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팀 분위기부터 전술, 선수 개개인들의 능력치까지 맨유는 90분 내내 모든 면에서 첼시에 압도당했다. 경기 시작 30초 만에 첼시의 선제골이 들어가면서 최근 빅매치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최악의 실수'까지 시전했다. 맨유의 실수만으로 경기 흐름이 뒤집어졌다고 하기도 힘들다. 30초 만에 골을 넣고도 이후 90분 내내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 무서운 집중력으로 달린 것은 맨유 선수들이 아니라 첼시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맨유는 8라운드 리버풀 원정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한 것에 이어 첼시전에서는 대패까지 당하면서 또다시 침체된 분위기에 빠졌다. 이미 지난 9월 초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와의 더비전에서 1-2로 패하며 하락세를 탔던 맨유는 이후 클럽 역사상 30년 만에 왓포드에게 패하는 굴욕을 맛보는 등 한참이나 기복을 겪어야 했다. 이후 레스터 시티전 4-1 대승과 유로파 리그에서의 승리로 10월 들어 다시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며 '맨유 부활'의 서곡을 알리는 듯 했지만 이 흐름마저 산산조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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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와 맨유의 경기가 끝난 뒤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해설자인 티에리 앙리는 "첼시의 어떤 선수들은 마치 무리뉴 감독과의 경기에서 승점을 따내려는 듯한 인상까지 받았다"고 평가했다. 홈 팀인데다 경기에서 큰 스코어로 앞서고 있음에도 첼시 선수들이 경기 종료 직전까지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기 때문이다. 첼시는 지난해 12월 주제 무리뉴 감독의 전격 경질을 전후해 주요 선수들이 '태업'을 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하지만 약 1년 만에 리그 최대 라이벌 팀 수장으로 스탬포드 브리지를 찾은 무리뉴 앞에서 통쾌한 반전극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그라운드 안에서 '적개심'이나 '반발심' 같은 심리적인 요인은 승리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분명히 경기 외적인 요소지만 경기장 밖에서 가져온 심리적인 이유들로 경기장 안의 선수들을 자극하고 독려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무리뉴 감독은 이런 요소들까지, 때로는 잔혹할 정도로 오로지 승리를 위해 활용할 줄 아는 지도자로 유명했다. 하지만 9라운드 첼시전에서 맨유의 무리뉴 감독은 경기장 안에서의 전술 대결이나 경기장 밖에서의 심리적인 싸움 모두 '완패'했다.

경기 후 타격은 더 크다. 최근 몇 년 동안 수비가 가장 큰 취약점으로 거론되어 온 맨유는 첼시전에서 중앙 수비수 에릭 바이가 부상을 입고 교체 아웃됐다. 무리뉴 감독은 "무릎 인대 부상이어서 상황이 심각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맨유는 이 날 바이 외에도 펠라이니가 부상으로 후반전에 나서지 못했다. 필 존스, 미키타리안 등 기존 부상자들까지 더하면 심각한 전력 누수다.

설상가상으로 맨유는 오는 27일 새벽 또 한 번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있다. 맨유의 EPL컵 다음 상대는 다름아닌 맨체스터 시티. 9월 초 맨유를 잡고 승승장구 가도에 올라서는 듯 했던 맨시티 역시 최근에는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나란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는 맨시티 역시 다시 한 번 맨유전에서 총력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맨시티전에서마저 패한다면 이제 맨유는 2016/17 시즌 개막 3달여 만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것은 '전임 감독이었던 루이스 반 할보다 새로 부임한 주제 무리뉴가 더 부진한 성적으로 팀을 이끄는' 최악의 결과다. 또 하루빨리 팀을 침체된 분위기에서 끌어내야 하는 무리뉴 감독은 컵대회 맨시티전과 리그 10라운드 번리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중대한 시험지를 받아들게 된다. '웨인 루니' 기용 문제다. 루니는 리그 8라운드 리버풀전에서는 후반 교체 카드로 활용됐으나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이지 못했고, 첼시전에서는 아예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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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 감독은 중국 클럽 등의 러브콜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루니에 대해 여러 번 "판매불가 선수"라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하지만 25일 영국의 '더 선'을 비롯한 몇몇 언론들은 무리뉴 감독이 루니에게 이적을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연달아 보도하기 시작했다. 무리뉴 감독은 두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팀의 침체에 누구보다 위기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대표팀에 이어 소속팀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루니를 시작으로 자신의 선수 기용과 지금의 전술에는 변화와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직면해 있다.

지금 무리뉴 감독과 맨유를 둘러싼 가장 큰 위기감은 지지부진한 루니 카드를 전격 제외하고, 맨유의 선수기용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올드 트라포드를 흥분케 했던 '무리뉴 효과'는 시즌 초반 1개월뿐이었다는 최악의 평가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를 것이란 사실이다. '스카이스포츠' 패널이기도 한 리버풀 레전드 출신의 그레엄 수네스가 던진 일침은 의미가 더 커 보인다. 수네스는 맨유가 첼시에게 대패를 당한 이후 "무리뉴 감독은 아직도 맨유에서 자신이 작성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11명의 선발 명단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간간히 번뜩이는 공력 능력을 과시하는 루니의 기량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고, 그가 경기 외적인 일들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수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이런 이유들이 무리뉴 감독으로 하여금 '루니 제외'라는 결단을 내리는 데 주저하게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베컴이나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주장 로이 킨을 내보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결단은 누구보다 퍼거슨 감독 자신에게 새로운 세대의 팀이 필요하다는 자극과 위기 의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바로 그 위기 의식이 맨유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오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어느 조직이든 혁신이 한 번뿐일 때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된다. 현재 유럽 축구시장에서 호날두, 메시 다음으로 많은 액수의 주급을 받는 루니를 그저 그라운드 밖의 분위기 메이커로 쓰기에는, 지금의 맨유가 처한 상황이 너무 절박해 보인다. 계륵이 된 루니와, 결단 앞에 선 무리뉴. 어떤 클럽이 세 번이나 감독 교체에 실패하면 재건 가능성도 크지 않다. 맨유의 '골든타임'은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

[사진=Getty Images/이매진스]

(SBS스포츠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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