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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S 스토리] 더 멀리, 더 빠르게… 온몸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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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선수로 해외 진출 잇따라… 국가브랜드 제고 ‘민간대사’ 역할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이다.”

2008년 네덜란드 비영리 경제단체 ‘페네덱스(Fenedex)’는 현직 수출업자 1300여명을 대상으로 네덜란드 수출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을 뽑는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4강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이 25%의 지지를 얻어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왕세자(17%)를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친 당시 얀 페테르 발케넨더 네덜란드 총리마저 3위(8%)에 그쳤다. 현지에선 히딩크 전 감독이 한국과 호주 대표팀을 지휘하며 아시아 지역에서 네덜란드의 인지도를 높여 수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만국 공통의 스포츠는 개인 인프라만으로도 해당 국가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최근 한국은 지도자를 비롯한 많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국위선양뿐만 아니라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대사’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조성식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좋은 모습을 선보인 선수의 긍정적 이미지는 해당 국가 브랜드 제고에 크게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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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축구 선진국에 ‘스포츠 한류’ 떨친 스타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한국은 축구 변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주요 축구 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4명),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3명),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11명) 등 각 나라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축구 선진국에 ‘스포츠 한류’를 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 활약도가 가장 높은 한국 선수는 EPL의 ‘손세이셔널’ 손흥민(토트넘)이 꼽힌다. 그는 지난 8월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구단의 이적 제의가 들어왔지만 토트넘이 3800만유로(약 468억원)를 요구하며 거절했을 정도로 스타성을 인정받고 있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와 EPL을 모두 뛰면서 축구 강국 유럽에 한국 선수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는 평가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시절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하며 특급 골잡이로 이름을 날렸다. 지난 시즌 EPL로 이적한 뒤 적응기간을 거친 손흥민은 올 시즌 5경기 5골을 기록하며 펄펄 날고 있다. 손흥민은 영국 공영방송 BBC까지 활약상을 대서특필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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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무대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많은 출장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회 때마다 분데스리가 특유의 거친 몸싸움에 밀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선보이며 주전으로 도약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특히 한솥밥을 먹고 있는 미드필더 구자철,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은 활발한 움직임으로 현지 평가가 올라가는 추세다. 여기에 중국 슈퍼리그에서는 홍정호(장쑤 쑤닝), 장현수(광저우 부리)를 비롯해 한국 수비수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한국 특유의 압박 수비를 펼치고 있다.

이들에 앞서 활약한 해외 축구 스타로는 2005년부터 7시즌 동안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박지성(35) JS파운데이션 이사장이 있다. ‘산소 탱크’로 불리며 맨유의 중원을 지휘했던 박 이사장은 선수 시절 명성을 활용해 스포츠 한류를 전파하는 좋은 예다. 그는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매년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JS CUP U-12)를 열어 국제 축구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박 이사장은 은퇴 직후인 2014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맨유 앰배서더(홍보대사)로 선정되며 바비 찰튼, 게리 네빌 등 팀의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79년부터 10년 동안 ‘갈색 폭격기’라 불리며 분데스리가를 누빈 차범근(63) 전 축구대표팀 감독은 스포츠를 매개로 한국을 널리 알린 원조다. 차 전 감독은 당시 현저하게 낮았던 한국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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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한류 경제효과도 ‘대박’

세계 인기종목에서 위상을 떨치는 한국 선수들의 경제 파급 효과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의 활약이 이어질수록 이들이 창출하는 경제효과가 천문학적 수준에 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한국의 위상을 떨치고 있는 ‘태극 낭자’들은 우승상금 외에도 막대한 경제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광고업계는 국제골프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우승할 때마다 국가 브랜드 홍보와 기업 이미지 제고, 소비 증가 등을 고려해 최소 2000억원 규모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올 시즌 LPGA 한국 선수가 7승을 합작한 점을 감안하면 무려 1조원이 넘는 경제효과가 창출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선 경제효과가 더욱 올라간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올림픽 메달 1개당 경제적 가치가 최대 2690억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지난 8월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며 사상 최초의 ‘골든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박인비(KB금융그룹)는 스포츠 한류를 전파하면서 막대한 경제효과를 발생시킨 셈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유망주도 잠재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지난 1월 경희대학교 스포츠·문화콘텐츠연구소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 후베닐A(19세 이하 팀)에서 뛰고 있는 이승우의 가치 평가액을 2280억원으로 내다봤다. 이는 TV중계 등 직접효과(1330억원), 간접효과와 선전효과(950억원)을 합친 것이다.

다만, 선수들의 활발한 해외진출에 따른 역풍도 있다. 국내 스포츠 리그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은 스타 선수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평균 시청률이 0.1~0.3%에 불과할 정도로 인기가 떨어졌다. 국내 리그 기반이 약해지자 K리그는 스타 선수 발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해외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선수가 해당 국가의 이미지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달 18일 EPL의 기성용(스완지 시티)은 사우샘프턴과의 정규리그 5라운드 경기 도중 교체된 데 불만을 품고 귀돌린 감독의 악수를 거부한 채 벤치로 향했다. 기성용의 이 같은 행동은 현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기도 했다. 조 교수는 “ 국가적 차원에서 스포츠를 수출산업으로 인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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