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무 아나운서는 일명 ‘KBS 예능 소방관’이다. 최근 첫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서 1년 만에 하차한 전현무 아나운서를 만났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 ‘밉상’ 이미지와는 달리 세련되고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부쩍 야윈 얼굴이 유독 눈에 띄었다.
“방송은 늘 즐겁지만 피로감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것 같아요. 따로 보양식을 챙기진 않고 영양제만 엄청 먹어요. 링거는 간간히 맞고요. ‘남자의 자격’ 할 때는 농담 아니고 하루 종일 찍으면서 숙직 서고, 오전․밤 라디오 뉴스까지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제정신이 아니었던 적도 많았던 것 같아요. 하하” 그가 멋쩍게 웃었다.
‘해피투게더’, ‘불후의 명곡2’, ‘도전 골든벨’, ‘승승장구’, ‘남자의 자격’, ‘1박2일(시청자투어)’, ‘시크릿’, ‘명, 받았습니다’, ‘비타민’, ‘생생정보통’…. KBS 예능은 전현무 없이 안 돌아가나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맹활약 중이다. 특히 김구라, 신정환 등 출연자가 돌연 하차했을 때 1순위로 불려가 그 빈자리를 채운 장본인이다.
“가끔 라디오에서 저도 모르게 헛소리가 나오기도 했어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방송에 투입된 적도 있어요.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한 걸음에 달려갔지만 정신과 체력이 때때로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 거죠.”
그는 앞서 라디오 뉴스를 펑크 내 방송 사고를 낸 경험을 언급하며 “요즘엔 정신 바짝 차리고 산다”고 했다. 이어 “아예 숙직 할 땐 라디오 부스에서 잔다. 불안하니까 아예 라디오 부스 실에서 잔다. 방송을 하려면 누군가 들어와 깨우니까”라고 덧붙엿다.
준비도 없는 즉시 투입이 반복되다 보니 타고난 그도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애드리브, 혹은 긴장감 완화를 위해 던진 멘트가 의도와 다르게 전달돼 시청자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는 ‘불후의 명곡2’ 김구라의 이름을 언급하며 “‘불후의 명곡2’ 같은 경우는 방송 시작 3시간 전에 연락을 받고 급히 투입됐다. 컨디션 난조로 병원에 가려던 차에 녹화에 참여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김구라는 사실 제게 ‘독이 든 성배’였어요. 웬만해서는 대체가 안 되는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죠. 워낙 식견이 풍부해 그런 깊은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독설은 날카롭지만 정확하죠. 사실 저는 그냥 막 던지는 거예요. 대기실은 어떤 잣대를 갖고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출연자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담화요. 즐기는 경연을 위한 준비 그리고 마무리를 하는 공간. 다양한 뒷 이야기를 담는 곳이요. 제 방식의 진행 역시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의 눈빛이 한층 진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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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라기 보다는 예능인의 행보를 짙게 보이고 있는 그는 사실 언론 준비생 사이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초특급 브레인이다. YTN 앵커로 데뷔한 뒤 2006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 당시 조선일보와 YTN을 한 번에 합격하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런 그가 ‘국민 밉상’으로 ‘동네북’이 됐다. 심지어 그의 회당 TV 출연료는 1만 8천원, 라디오는 1만원이다. 살인적인 스케줄에는 다소 민망한 금액. 그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까?
그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돈과 명예 보다 “누구에나 만만한, 거부감 없는 친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예전엔 첫 인상이 차갑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어느 새 지나가는 사람도 나만 보면 웃는다. 그게 좋다”고 털털하게 웃는다.
“악플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때론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건강한 비판은 저를 성장시키니까요. 맹목적인 비난은 무시하는 편이지만 정말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열심히 보고 고치려고 애씁니다.”그가 잠시 머뭇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뜨고 싶어서 발악 한다’ ‘튀고 싶어서 오버 한다’ 등의 말엔 상처를 받죠. 제가 목적 지향적이기 때문에 저를 섭외한 제작진의 요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려고 노력 하거든요. 제가 김수현 같은 출중한 배우의 마스크였다면 제작자가 기대하는 건 비주얼이겠죠. 그럼 고급스러운 멘트, 여심을 녹이는 그런 캐릭터를 추구하겠지만 그들이 제게 원하는 건 재미예요. 딱딱한 아나운서로서의 소양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제작진의 니즈에 맞게 열심히 하려는 것을 무조건 진정성 없이 욕하고 튀려고 한다고 할 땐 상처가 되죠.” 한층 낮아진 그의 목소리 톤에서 그간 겪은 심적 고뇌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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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인과 아나운서의 중간 형태를 장기간 유지해 오다 보니 장기적인 플랜과 보다 확고한 정체성 확립도 필요할 듯 했다.
“첫 예능 신고식과도 같았던 ‘해피투게더’에서 ‘7단 고음’을 했을 때 어떤 시청자가 ‘당신 덕에 우울증을 고쳤다’는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10년간 한 번도 웃지 않았는데 저의 어설픈 ‘7단 고음’에 빵 터졌다는 거죠. 그때 어떤 떨림과 뭉클함을 느꼈어요. 누군가 나로 인해 웃고, 희망을 얻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행복했죠. 스타 MC 보다는 장시간 시청자들과 친숙하게 함께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스펙트럼을 더 넓혀야 겠죠.”
아나운서 출신의 예능인, 사실 이전까지 사례를 봤을 때 그 길은 분명 쉬운 길이 아니다. 한 가지 캐릭터, 능력만으론 살아남기엔 예능계는 굉장히 치열한 경쟁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의 ‘밉상’ 캐릭터를 넘어 다양한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아나테이너’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 아직도 꿈이 많아요. 사실 김태원 형이 ‘밉상송’을 준다고 했어요. 몇몇 스타 작곡가의 제의도 있었고요. 우리 모두 웃어 넘겼죠. 근데 요즘 정형돈씨를 보니 용기가 생기네요.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구나, 가수가 예능을 하듯 예능인도 저마다의 성향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세상이구나, 연기도 하고 싶고 어떤 분야든 최선을 다해 경험하고 싶어요. 언젠가 제가 꼭 하려는 꿈에 굉장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기자 kiki2022@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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