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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올림픽에선 ‘닥공’ 집착 않고 수비축구 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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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 맞는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는 절대 그렇게 안 할 겁니다. 본선에서는 공격보다는 수비에 비중을 둬야죠. 토너먼트에서는 때에 따라서 1-0이 되면 걸어 잠글 수도 있고요. 선수비 후역습도 추구할 겁니다. 제 장점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최근 경기도 분당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태용(46)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리우올림픽 본선에서는 절대 ‘닥공(닥치고 공격)’에 목을 매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격축구를 지향하지만 강팀과 만날 때는 전략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생각이다. 지난달 30일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에 당한 뼈아픈 패배로 얻은 교훈이다.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8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다. 축구 강국 브라질도 못한 기록을 태극전사들이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하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승에서 ‘숙적’ 일본에 2-0으로 앞서다 내리 3골을 얻어맞아 준우승에 머물러 국민들의 실망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결코 자만하거나 방심한 건 아니다. 우리가 훨씬 기회도 많았다. 일찍 골이 터져 이기고 있어서 이 참에 일본을 완전히 박살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고국에서 보는 국민이 잠 안 자고 응원하는데 2-0보다 3-0, 4-0이 낫지 않겠나 싶어 계속 공격하다가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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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최근 경기도 성남 분당의 한 카페에서 취임 1주년 및 올림픽 8회 연속 본선 진출에 대한 소감을 밝히며 환하게 웃고 있다.성남=남정탁 기자


신 감독은 9일이면 감독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 팀을 이끌던 이광종 전 감독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물러나면서 올림픽 팀의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1년을 돌아본 그는 “대회 전에는 반반이었는데 어찌 됐든 1차 목표인 올림픽 진출은 이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1차 관문은 통과했지만 더 큰 산이 그 앞에 서있다. 본 무대인 리우올림픽까지 이제 딱 6개월 남았다. 취임했을 때 밝힌 최종 목표인 ‘메달 획득’을 위해 남은 기간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다.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은 어리기 때문에 소속팀에서 경기 출전이 쉽지 않다.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위해 소속팀에 해당 선수를 뛰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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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 때는 23명이 나섰지만 올림픽에는 18명만 나갈 수 있다. 그것도 3명은 와일드카드로 24세 이상 선수에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23세 이하 선수 중에서는 15명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헤어질 때 이제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라고 얘기했다. 소속팀에서 경기에 뛸 수 있어야 한다. 냉정하게 팀에서 못 뛰면 발탁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안 되면 임대라도 가야 한다. 본인들이 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 확정으로 이제 누가 와일드카드로 뽑힐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신 감독은 “최고 이슈니까 궁금한 건 알겠지만 지금은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팀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희생할 수 있는 선수를 뽑겠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그동안 와일드카드는 24세 이상 중에서 실력은 걸출하지만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선수들이 발탁됐다. 그러나 신 감독은 “병역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군대를 다녀왔어도 올림픽 팀에서 전술적으로 필요하면 뽑겠다. A대표팀 가운데 뽑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결승전에서의 역전패가 인상이 강하게 남지만 올림픽 대표팀은 이번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실력이 부족해 ‘골짜기 세대’라고 불리며 주목받지 못하던 대표팀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대표팀 선전 뒤에는 신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신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내가 좀 푼수가 되더라도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눈높이를 맞춰갈 것”이라며 “내가 선수 생활하던 시절 얘기를 늘어놓으면 선수들이 믿고 따라오지 않는다. 선수들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면서 따라오게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리더십의 바탕이 선수 시절 오랜 주장 경험과 호주에서의 코치 생활에 있다고 했다. 그는 1992년 일화천마축구단(현 성남FC)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2004년까지 한 팀에서만 활약한 K리그의 전설이다. 그는 팀이 1993∼1995년, 2001∼2003년 두 번에 걸쳐 K리그 3연패를 이뤄낼 때 중심에 있었다. 특히 뒤의 3연패 때는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그라운드에서 다독이고 미드필더로서 공수를 조율했다. 호주에서는 코치로 뛰면서 수평적인 리더십을 배웠다. 그는 “성남에서 박종환, 차경복 감독님 등을 거치면서 그분들께 배울 점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주장을 8년씩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고백했다.

지도자로서 프로에서 이미 큰 성과도 냈다. 감독 경력 2년 만인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성남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한 형님 리더십의 결과물이다. 그의 리더십은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 밑에서 코치로 활약하면서 한층 더 진화했다. 신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은 연고에 휩쓸리지 않고 정말 선수 실력 그 자체를 본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선수라면 누구든지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을 실천하는 분”이라며 “슈틸리케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말투와 제스처까지 꼼꼼히 본다. 감독님을 보좌하면서 더욱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클럽을 지휘할 때보다 대표팀 운영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신 감독은 “대표팀은 전 국민을 상대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서 오는 부담감과 압박은 클럽 감독할 때와 하늘과 땅 차이다. 잘 하면 인기가 하늘을 찌르겠지만 못하면 축구 인생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게 이 자리다”고 털어놨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긍정 전도사’로 통하는 신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를 항상 강조한다. 할 수 있는데 두려워하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태용호는 이제 숨을 한 번 고르고 리우를 향해 출항한다. 그는 올림픽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밝히진 않았지만 “항상 목표는 최고여야 한다”고 밝게 웃어보였다.

성남=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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