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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김성근과 장미란의 대화 "체육인 미래, 함께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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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역도선수 김병찬의 쓸쓸한 죽음에 슬퍼하며 장시간 대화

연합뉴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종목과 나이를 떠나 우정을 쌓고 있는 '야신' 김성근(73) 한화 이글스 감독과 '역도여제' 장미란(32)이 체육인의 어두운 미래에 대해 논했다.

장미란은 김 감독이 4일 김 감독이 경기를 치르는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를 찾았고, 둘은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평소처럼 안부를 묻고 서로를 응원하던 김 감독과 장미란은 지난달 26일 강원 춘천 자택에서 쓸쓸히 숨진 역도 스타 김병찬 선수가 화두에 오르자 대화 주제가 무거워졌다.

김 감독은 "뉴스를 통해 고(故) 김병찬씨의 사연을 들었다. 정말 슬픈 일이었다"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안타까워했다.

장미란은 "사실 김병찬 선배를 뵌 적은 없고 다른 선배들을 통해 어떤 분이셨는지에 대해 들었는데 이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실 줄 몰랐다"며 "정말 비통했다. 후배로서 죄송한 마음뿐이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김병찬씨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90㎏급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1992년 아시아역도선수권 3관왕에 오르는 등 당시 남자 역도 간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6년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불행이 시작됐고 매월 52만5천원의 메달리스트 연금으로 생활하다 지난달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김병찬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김 감독과 장미란은 '또 다른 김병찬이 나오지 않게 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김 감독은 "김병찬씨 덕에 즐거워한 사람이 참 많았을텐데…. 나를 비롯한 체육인, 그리고 체육 관련 행정가들의 잘못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인 뒤 "늦었지만 더 늦지 않게 체육인부터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체육인 복지'에 대해서는 장미란이 전문가다. 은퇴 후 장미란 재단을 설립해 청소년들의 체육 활동을 돕는 장미란은 최근 은퇴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몇몇 국가대표 출신 선수와 함께 국회를 찾아 "체육인 복지법 통과와 한국체육인복지재단이 설립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국회의원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장미란은 "솔직히 나도 현역 때는 이렇게 체육인들이 힘겹게 살아가는지 몰랐다. 논란을 만들고 싶진 않지만, 현실이 너무 답답하니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운을 뗀 후 "최근 은퇴한 선수 중에도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20년 가까이 한 분야를 파고든 전문가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해당 종목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되더라. 이 과정에서 겪는 설움도 크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현역 시절에 정말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줬는데 그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전문가를 활용하는 제도도 정착되지 않았다"며 "김병찬씨 같은 사례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은퇴 선수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한 상황. 하지만 그 첫걸음인 체육인 복지법 제정안이 2012년 3년째 진척이 없는 상태다.

장미란은 "은퇴한 선수가 직업 교육 등을 받으면 지원센터에서 60만원 정도를 지원한다. 메달리스트가 받는 연금, 부상 선수의 상해보험 지원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은퇴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정말 그 정도인가"라고 놀라며 "심각한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장미란은 "'우리가 오래 운동을 했으니 당연히 지원해달라'는 게 아니다. 선수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의미다"라고 했다.

김병찬 씨가 쓸쓸히 세상을 떠난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조금씩 체육인 복지법의 필요성을 깨닫는 이들이 늘긴 했다.

하지만 체육인들조차도 체육인 복지법에 관심이 많지 않다.

장미란은 "일단 체육인부터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에 김성근 감독도 "당연한 얘기다.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답했다.

김성근 감독과 장미란은 2008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장미란은 젊은이들 못지않은 김 감독의 열정에 깊이 빠져들었다. 김 감독은 보통의 이십 대와는 다른 장미란의 인내심에 감명받았다.

이후 장미란에게 '야구'는 즐거운 취미가 됐다. 2008년 한국시리즈 열린 잠실구장을 찾아 SK를 응원하기도 했다.

김 감독도 "알고 보니 참 어려운 종목이더라"고 역도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꾸준히 만나고 대화하면서 둘은 우정을 쌓아갔다.

장미란이 은퇴 후 재단을 설립하자 김성근 감독은 '후원자'를 자처하며 물심양면으로 장미란을 도왔다.

김성근 감독은 "이번에 장미란과 대화하면서 또 많은 걸 느끼고 반성도 했다"며 "체육인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겠다. 프로와 아마를 떠나 모든 체육인들이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미란은 "감독님께서 조언과 격려를 해주셨다. 힘이 난다"며 "체육인 복지법, 태릉선수촌 이전 문제 등 체육계 현안이 참 많다. 감독님께 얻은 힘으로 안 되더라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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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도여제 장미란.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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