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짬] ‘제자 사랑’ 충암고 야구부 감독 이영복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덕수고와 충암고의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및 주말리그 왕중왕전 결승전. 두 팀의 에이스인 덕수고 엄상백 선수와 충암고 조한욱 선수가 피 말리는 투수전을 이어갔다. 결국 덕수고의 4-0 승리. 전날 준결승에서 조 선수는 129개를 던진 반면 엄 선수는 77개밖에 던지지 않은 체력 차이가 컸다. 엄 선수가 우승을 만끽하는 사이 조 선수는 3루 쪽 더그아웃에서 고개를 떨군 채 서럽게 울었다. 충암고 이영복(45·사진) 감독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제자의 등을 쉼없이 다독였다. 이 모습은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야구팬들에게 생생히 전달됐다. 청룡기 출전 57년 만에 ‘3년 연속 우승’에 성공한 덕수고도 화제였지만 누리꾼들에겐 조 선수의 눈물과 이 감독의 ‘제자 사랑’이 더 큰 화제가 됐다. 누리꾼들은 “조한욱의 눈물, 참스승이 옆에 있기에 언젠가는 꼭 웃을 것이다”, “이영복 감독은 제자의 아픔을 함께 나눌 줄 아는 요즘 보기 드문 감독이다” 등의 댓글로 응원했다.
강압훈련·상명하복 대신
‘인성야구’ 펼치는 감독님
청룡기 패배 다독인 장면 화제
“패배로 더 많은 것
배울 수 있다면 져도 괜찮아”
이 감독은 결승전 당시 상황에 대해 “결승전 패배보다 제자의 눈물이 더 가슴 아팠다”고 했다. 그는 “우승은 중요하지 않다. 제자들이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져도 괜찮다”고 말했다.
충암고의 저력은 이 감독의 ‘인성 야구’에서 나온다. “강압적인 훈련 방식과 상명하복식 팀 분위기로는 절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게 이 감독의 지론이다. 그는 “야구보다 사람이 먼저”를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메이저리그를 예로 들었다. “로니 치즌홀이라는 선수는 고교와 대학 때 뛰어난 기량에도 범죄에 연루되는 등 인성 문제가 도마에 올라 마이너리그에서 인성교육부터 다시 했어요. 지금은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져 클리블랜드 중심타자로 활약하고 있죠. 엘에이(LA) 다저스가 지난해 시즌 초반 부진한 성적에도 야시엘 푸이그를 곧바로 승격시키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감독의 제자 중에도 2명이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다. 이학주(24·탬파베이 레이스)와 문찬종(23·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학주는 빠르면 올 시즌 안에 메이저리그 승격을 기대하고 있다. 둘은 “고교 시절의 인성교육이 미국에서 야구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하곤 한다.
청룡기 결승에서 덕수고에 뼈아픈 패배를 맛본 선수들은 불과 나흘 만에 설욕의 기회를 잡았다. 지난 2일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청룡기 결승전 스코어와 같은 ‘4-0’으로 패배를 되갚았다. 올해 전국대회 4강 경험이 있는 서울지역 6개 팀이 치른 이 대회에서 충암고는 내친김에 신일고와 서울고를 잇따라 제압하고 10월 제주 전국체전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하게 됐다. ‘조한욱 선수의 서러운 눈물과 이 감독의 제자 사랑’이 선수들에게 큰 동기 유발이 된 것이다.
충암고 야구부 역사는 그의 나이와 같은 45년이 됐다. 충암고는 그 기간 동안 전국대회에서 10번 정상에 올랐는데, 그 가운데 6번이 지난 11년간 이 감독이 일군 성적이다. 그는 2011년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으로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의 지도를 받은 선수는 코치 시절 신윤호(39·SK), 조성환(38·은퇴), 박명환(37·은퇴), 장성호(37·한화), 김주찬(33·KIA), 윤요섭(32·LG) 등이 대표적이고, 감독이 된 뒤에는 메이저리그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학주(24)를 비롯해 홍상삼(24), 최현진(22), 변진수(21·이상 두산), 문성현(23·넥센), 정용운(24·KIA), 강병의(22·LG)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감독이 기억하는 제자는 따로 있다.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진저리를 치고 가출한 선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려고 한 선수들이다.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마음을 돌렸고, 남몰래 주머니를 털어 야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스승의 날 저를 찾아오는 녀석들이죠”라며 웃었다.
“제 꿈이요? 제자들이 바른 인성으로 사회에서 공동체적 삶을 잘 살아가는 걸 보는 것이죠. 저는 야구 감독이기 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잖아요.” 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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