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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19일 가로, 세로, 높이 1m 구조물 안에 자신을 가두고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이 투쟁으로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 널리 알려졌다. 공동취재사진 |
“원청에 위험한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어도, 일감을 끊을까 봐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이상규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오는 4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가운데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하청 노동자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노조와 단체교섭 의무가 부과되면서 산업안전, 장시간 노동, 저임금 등 그동안 방치돼왔던 사업장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상규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장은 “같은 업무를 해도 원·하청에 따라 작업환경의 차이가 컸다”며 “방진마스크·귀마개 같은 보호장구조차 하청 노동자들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하청 노동자는 원청보다 더 위험한 일을 하지만,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해 중대재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 5월 금속노조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올해 4월까지 현대제철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53명 가운데 40명(75.5%)이 사내하청, 1명이 무기계약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위험의 외주화’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좀 더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싶었지만 한계가 많았다. 하청 노동자들이 하청업체를 상대로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원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만 되풀이됐다. 하청 노조는 원청인 현대제철에 원·하청이 함께 참여하는 ‘산업안전 공동협의회 구성’을 요구해왔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관계자는 “하청 노조가 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도 원청이 접수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구조였다”며 “노조법(노란봉투법)이 개정되면 공식적인 창구가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제철에는 2천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도 하청 노동자에겐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종성 보건의료노조 이화의료원새봄지부장은 “이화의료원 목동·서울·장례식장 등에 하청업체만 3곳이다. 미화노동자들의 근무시간, 휴게시간, 휴게실 등 모든 걸 원청이 지정해놓고 교섭을 하자고 하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노란봉투법 통과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월~토요일 주 6일은 다 나오고, 일요일·공휴일은 두 조로 나눠서 일하고 있다”며 “2021년부터 하청업체가 주 5일제 근무를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답답해했다.
저임금, 차별 문제도 시급하다. 서재유 전국철도노동조합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수석조직부장은 “같은 역무 업무지만 자회사 노동자는 2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 수준”이라며 “근무형태도 코레일은 ‘4조 2교대’, 자회사는 ‘3조 2교대’다. 원청이 정한 기준에 따라 용역계약이 이뤄지니, 코레일네트웍스와 교섭을 한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강화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으로 업무강도가 급증한 금융권 콜센터노동자들도 원청과의 교섭을 원하고 있다. 이들 역시 원청이 정한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데, 최근엔 인공지능(AI) 상담사를 도입하는 곳들이 늘어 일자리 위협까지 받고 있다. 김현주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장은 “콜센터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이 계약을 해지하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구조”라며 “고용안정에 대해 원청과 직접 교섭하고 싶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쟁의행위가 폭증할 것이라는 경영계 우려에 대해 하청 노동자들은 오히려 파업이 줄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규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던 것은 (권한이 있는) 원청을 교섭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라며 “대화할 시간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성 지부장도 “원청하고 교섭을 하는데 파업을 왜 하냐. (파업하면) 임금도 못 받는데 나도 하기 싫다”며 “우리가 원청에 원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삶의 질을 조금만 개선해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김현주 지부장 역시 “경영계는 노조가 원청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원청이 망하기를 바라는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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