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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베를 극복하는 한-일 관계를 위해 [임재성의 함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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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베를 극복하는 한-일 관계를 위해 [임재성의 함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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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임재성 | 변호사·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현재 한-일 관계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승리해 만든 구조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식민지 역사 문제와 이웃 국가로서의 협력은 부침은 있었지만 일정한 분리를 가지고 ‘투트랙’으로 움직였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 이후, 아베 총리는 경제 보복과 사실상의 외교 단절로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가장 강경하게 대응했다. 역사와 외교를 ‘원트랙’으로 묶어버렸고,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항복 없이는 외교도 없다’고 밀어붙였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 ‘파탄 난 한-일 관계를 회복하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고민이나 대안은 부재했다. 결국 2023년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의 책임을 모두 한국 정부가 떠안는 ‘제3자 변제’라는 백기 투항을 선택했다. 외교부조차 ‘한국이 물잔에 반을 먼저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 반을 채우길 기대한다’고 말할 만큼 치욕적인 조치였다. 외교에서 ‘기대’는 구걸이다. 윤석열은 같은 시기 ‘100년 전 일로 무릎 꿇으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대통령실 실세 김태효는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사과를 요구할 생각조차 없다고 했다. 이후 한국은 유네스코에서 사도광산이나 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동원 시설이 쟁점이 될 때마다 일본에 내리 졌다. 이기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이 말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국제정치적 상황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식민지 역사 문제는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의롭지도, 무엇보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현재 한-일 관계의 모순이 응축된 강제동원 영역으로 초점을 맞춰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은 식민지 피해자들을 보호한다’라는 점을 천명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걸림돌’로 취급했다. 당시 벌어진 일들은 ‘어떻게 한국 정부가 이럴 수 있나’ 싶을 만큼 끔찍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미쓰비시중공업에 동원된 강제동원 피해자이자 인권활동가인 양금덕에게 ‘대한민국 인권상’ 서훈을 추진하자 외교부가 이를 가로막았다. 일본 눈치를 보느라 식민지 피해자들에게 고생하셨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정부였다.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은 정부한테 눈엣가시였다. 정부는 그들을 상대로 기습적인 공탁을 시도해 판결의 집행력을 소멸시키려 했다. 고령으로 의사능력이 떨어진 피해자가 생기면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돈을 쥐여주고 권리를 뺏어 갔다.



다행히 양금덕에 대해 중단되었던 서훈 절차는 지난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다시 진행 중이다. 기쁜 일이다. 이어져야 할 두가지 국내적 조치를 제안한다. ①제3자 변제를 거부했던 피해자 양금덕, 이춘식에 대한 제3자 변제는 모두 당사자들의 의사능력이 없는 시점에 이루어졌다. 이춘식의 경우 자녀가 서명을 위조했음이 경찰 수사에서 확인된 상황이다. 당시 절차를 감사해 위법·부당이 확인된다면 두 분에 대한 제3자 변제를 취소해야 한다. ②제3자 변제를 반대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일방적 공탁이 위법하다는 법원의 결정이 2023년에 연달아 내려졌는데, 정부가 불복해 다투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불복도 취하해야 한다. 공격에서 보호로, 제거에서 존중으로의 전환을 표명하는 상징적 조치일 것이다.



다음으로 대일본 정책이다. ‘피해자 권리 회복’이 외교 의제에 포함되어야 한다. ‘말도 못 꺼내는 상황’에서 최소한 ‘요구의 등장’까지는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3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언론의 한-일 관계 질문에 “오른손으로 싸워도 왼손은 잡는다”고 답했다. 아베와 윤석열이 결착시킨 역사와 외교를 다시 투트랙으로 분리해야 한다.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대일본 요구의 하나로 제안하는 것은 일본 쪽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에 참여하라고 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사과도 책임도 없는 현재의 ‘제3자 변제’ 정책을 최소한 일본 쪽의 재정적 부담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현실 가능성을 두고 반론이 있겠지만, 피해국으로서 요구조차 못 하는 것의 비상식성이 더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8·15 경축사에서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강제동원 피해자는 걸림돌이 아닙니다. 외교도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피해자를 기억하고, 보호하고, 대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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