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 사유를 내세워,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청부 민원' 관련 범죄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경찰은 공익신고자를 통해 청부 민원 의혹에 연루된 관련자들의 명단을 확보하고도, 이들에 대한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봐주기·부실 수사 의혹이 나온다.
권력 비판 언론 '옥죄기'... 류희림의 '청부 민원' 의혹
뉴스타파는 대선을 앞두고 있던 2022년 3월, 윤석열 후보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했다. 윤석열 씨가 정권을 잡자, 검찰은 뉴스타파에 대한 수사를 벌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도 나섰다. 뉴스타파의 기사를 인용해 윤 씨의 수사 무마 의혹을 다뤘던 언론사들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방심위는 과징금 부과를 위한 심의에 착수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수의 민원이 제기됐다'. 그런데 방심위 내부 관계자의 폭로가 터졌다. '방심위에 접수되고 있는 민원이 매우 수상하다'는 내용이었다.
뉴스타파는 이 민원의 실체를 추적했다. 방심위원장이었던 류희림 씨가 자신의 가족과 지인 등에게 민원 제기를 사주한 정황이 드러났다. 2023년 12월, 뉴스타파가 최초 보도한 일명 '류희림 청부 민원' 의혹이다. (관련 프로젝트: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
경찰, 류희림의 핵심 범죄 혐의에 '혐의없음' 처분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류 전 위원장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다. ▲류 전 위원장이 민원 접수를 사주함으로써 방심위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와 ▲청부 민원 의혹의 단초를 폭로한 공익신고자를 색출하려 하는 등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한 혐의였다.
첫 번째 고발장이 접수된 시점은 2024년 1월 10일. 경찰은 2025년 7월 21일, 고발 당사자(더불어민주당, 전국언론노동조합, 참여연대 등)들에게 '수사결과통지서'를 발송했다. 고발 이후 1년 6개월 만에,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경찰은 류 전 위원장의 범죄 혐의 가운데 이해충돌 위반 혐의만 일부 인정했다. 이 사건의 본질인 청부 민원과 관련된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서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뉴스타파는 서울 양천경찰서 지능범죄수사2팀이 작성한 수사결과통지서를 입수해,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유를 확인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류희림 청부 민원' 무혐의 사유① "사주된 민원 외에 진정한 민원 존재"
경찰은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 가운데 사주된 민원 외에 진정한 민원, 즉 '진짜 민원'도 있다고 봤다. 이를 토대로 방심위의 심의가 청부 민원으로 인해 진행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부 민원 내용이 유사하여 민원 사주의 의혹이 있으나 사주된 민원 외에 진정한 민원이 존재하는 이상, 일부 사주의혹 민원과 긴급안건 상정 사이, 사주의혹 민원과 방송심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도 어려운 점뉴스타파가 검사 윤석열의 수사 무마 의혹을 보도한 시점은 2022년 3월 6일이다. 다른 언론이 뉴스타파의 기사를 인용 보도한 시점도 이때다.
- 서울 양천경찰서 수사결과통지서 (2025.7.21.)
그런데 '인용 보도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민원이 방심위에 접수되기 시작한 건, 2023년 9월 4일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단 며칠 만에 민원 2백여 건이 방심위에 들어갔다. ▲인용 보도 시점(2022.3.6.)과 ▲민원 접수 시점(2023.9.4.) 사이에, 1년 6개월이라는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2023년 9월 4일은 당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방심위 같은 기관을 통해 가짜뉴스를 없애겠다"고 발언한 날이었다. 검찰이 뉴스타파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 시점이기도 했다. 뉴스타파 기사 인용 보도와 관련해, 그전에는 단 한 건의 민원도 접수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경찰은 방심위에 접수된 민원 중에 진짜 민원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
나아가 경찰은 수사결과통지서에 "사주된 민원이라 하더라도 사주를 받은 피사주인이 피의자(류희림)의 의견에 동조하여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면 해당 민원은 진정한 민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류 전 위원장이 민원을 청부했다고 하더라도, 사주를 받은 이들이 민원 내용에 동조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이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고발인들에게 발송한 수사결과통지서
그럼에도 경찰은 사주를 받은 당사자들이 민원의 내용에 동조했다고 봤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뭔지는 역시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
경찰, 청부 민원 의혹 연루자 조사도 안 해... '부실 수사' 의혹
류 전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폭로한 탁동삼 방심위 팀장은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경찰서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날 탁 팀장은 사주를 받아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의 명단을 정리해 경찰에 제출했다. 그러면서 수사 관계자에게 "청부 민원 의혹의 실체 규명을 위해, 이들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타파는 탁 팀장이 작성한 명단 속 인물들에게 연락했다.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지, 받았다면 어떤 식으로 조사가 이뤄졌는지 물었다. KBS 현직 기자인 A씨 등 뉴스타파가 접촉한 이들 전원이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준희 방심위 노조지부장은 "양천경찰서를 지휘하는 서울남부지검에 재수사 요청 또는 직접 수사를 촉구하는 서면을 체출하고, 경찰수사심의위원회나 헌법소원 같은 절차들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스타파 박종화 bell@newstap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