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정우가 장애인이에요? 나는 놀랍도록 순수한 아이의 눈동자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장애인이 아니면 대체 정우가 왜 이렇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 아이 눈에는 정우의 장애가 안 보이나?' 그래, 어린이들에게는 정우가 보이는 거였다. 친구들에게는 정우가 그냥 정우였다." (책 본문 中)
중학생 연우와 초등학생 정우, 발달장애 남매를 둔 중학교 영어 교사가 책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를 펴냈다.
저자 이수현 씨는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한데 어우러지는 '통합 교육'의 현실과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분리하면서도 '차별'은 아니라고 하는 사회를 향해 장애인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임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선 '학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교사였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완전히 다른 교사가 됐다고 한다.
발달장애 남매를 낳고 돌보기 전까지는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만 여겼을 뿐 교사, 학교, 사회와 국가의 책임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솔직한 깨달음이 이 책을 쓰게 했다.
장애아를 둔 '엄마 이수현'은 곳곳에서 높은 벽을 마주하며 절망했다. 신학기를 앞둔 겨울이면 '내 아이가 얼마나 중증인지'를 증명해야 했고, 딸이 생리를 시작한 해에는 여성 지원 인력을 요청했지만 여학생의 신변 처리를 지도할 수 없는 사회 복무 요원을 배치하겠다는 교육청에 찾아가 싸웠다.
"이런 일들을 통해 깨달았다. 민원은 힘없는 말단 직원과 시민끼리의 답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일을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사람끼리, 일선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끼리 물고 뜯는 싸움일 뿐임을 처절히 깨달았다." (100쪽, '싸우는 엄마들')
자신의 아이만 빠져 있는 학급 단체 사진을 보는 일도, 전시회에 내 아이의 작품만 걸려 있지 않는 일도 많았다. 현장 체험 학습이나 발표회 같은 행사를 앞두면 비장애 아이들이라면 듣지 않았을 "참여시키는 게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막막했다고.
이러한 경험들은 오히려 육아휴직과 간병 휴직으로 7년간 휴직했던 '교사 이수현'을 다시 교실로 돌아가게 했다. 엄마로만 살아가기에도 벅찬 날이 많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현장의 문제가 더 가까이 보이고 더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교사로서 자신이 할 일은 '수업'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누구에게나 편안히 열리게끔 개찰구를 넓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편을 우선하다 보면 오히려 더 특수한 상황이 소외되기 쉽지만, 가장 특수한 경우부터 살피다 보면 모두를 위한 교육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바지를 내렸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내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그 장애의 특성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학교가 화들짝 놀라 분리 외에는 어떠한 교육적 대처도 미흡하다는 사실이 늘 아쉽다. (중략) 적어도 '분리'는 '교육'이 아니라 명백한 '차별'이라는 것, 장애가 있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는 비장애 아이들에게도 비교육적이라는 통찰은 우리 교육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36쪽, '바지를 내리면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이 워낙 없다 보니 무엇이 차별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장애를 보는 시선을 바꾸고, '차별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깨달음을 안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자폐'라는 단어에 얽매이지 않고 아이와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다. 비장애 아이들의 부모처럼 놀이터에 가고, 여행도 다니면서 그저 자연스럽게 세상을 경험하도록 해 주고 싶다. 치료실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배우도록." (62쪽, '다섯 살의 연우에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너와 함께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아서 다행이야. 네가 나의 아이라는 것이 내게 더없는 행복인 것처럼, 내가 너의 엄마라는 사실이 너에게 행복이면 좋겠어." (65쪽,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 네이버에서 뉴시스 구독하기
▶ K-Artprice, 유명 미술작품 가격 공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