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에서 김용민 법안심사제1소위원장이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진술을 들으며 자료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1 |
'301 vs 574'
2023년말 기준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 수와 반대로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 수다. 회귀기업이 273개 더 많다. 언뜻 보면 경영 환경 악화로 기업 규모가 축소된 기업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재계는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피터팬 증후군'이다.
현재 중소기업은 세제 감면, 공공조달, 정부 지원사업 참여 등의 혜택을 받는다. 중견기업이 되면 이 혜택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주저하고, 오히려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내려오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은 정부의 기업 지원 정책이 대부분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진행된다"며 "성장할수록 혜택이 줄어드니 중소기업들이 적극적인 성장 경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규모보다는 업종으로 구분해서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당이 최근 추진 중인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피터팬'으로 남고 싶은 기업이 더 늘 수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확대'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를 대상으로 해서다. 규제를 피하려고 자산 규모를 2조원 미만으로 유지하거나 자진 상장 폐지까지 검토할 수 있다.
현장에서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은 상당하다. 실제 코스피 상장사인 중견기업 A사는 최대주주의 지분이 18%이고, 친족과 재단 등 특수관계인(32%)과 백기사로 추정되는 사모펀드의 지분(6%)까지 총 우호지분이 56%에 이르지만 상법이 개정되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가 보유한 14%의 지분 때문이다.
A사의 이사회 총 4명(사외이사 3명, 사내이사 1명)인데, 분리선출되는 감사위원 2명이 이사를 겸하고 있어 2명은 이미 외부 인사이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최대주주 측이 확실히 확보가능한 이사수는 1명이고, 나머지 1명은 외부세력과 경합한다. 헤지펀드가 소액주주와 결합하면 경영권을 뺏길 가능성도 있다.
모든 경영자는 평생을 투자해 일궈온 기업을 내주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 한다. 기업의 성장보다는 성장한 기업을 뺏길 수 있다는 공포가 더클 수 있다. 상법 개정으로 성장의 유리천장을 만들기 전 충분한 검토와 경영권 방어 정책이 필요하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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