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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람이에요. 함부로 때리면 안 돼요" [아침을 열며]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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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람이에요. 함부로 때리면 안 돼요"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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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5위 '인종차별국'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는
외국인 노동자도 보장받아야


전남 나주의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결박하고 지게차로 들어 올리는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가 확보한 이달 초 촬영된 영상에는 이곳 노동자가 이주노동자 A씨를 비닐로 벽돌에 묶어 지게차로 옮기는 모습과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다른 노동자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제공

전남 나주의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결박하고 지게차로 들어 올리는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가 확보한 이달 초 촬영된 영상에는 이곳 노동자가 이주노동자 A씨를 비닐로 벽돌에 묶어 지게차로 옮기는 모습과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다른 노동자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제공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이다. 외국 여행을 앞두고 목적지의 언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몇 마디 기본적인 표현을 출발 전 배워두기도 한다. 주로 인사말과 숙소, 식당, 교통편 관련한 표현들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말을 배우고 가야 하는 나라가 있다.

“우리도 사람이에요. 함부로 때리면 안 돼요. 다시 때리면 다른 회사로 갈 거예요. 그만 욕하세요.”

베트남의 인력 소개소 직원이 만든 한국어 교재의 내용이다. 2002년께 만들어져 많은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용한 이 교재에는 한국인 사업주의 폭력에 대처하는 말들이 담겨 있다. ‘안녕하세요’ 같은 의례적이고 좋은 말만 나와 있는 교재보다 훨씬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국에 가면 맞거나 욕을 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리 이런 한국어 표현을 배워둬야 한다는 것이다.

7월 초 전남 나주의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결박하고 지게차로 들어 올리는 인권유린 사건이 발생했다. 비슷한 시기 23세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폭염 속의 경북 구미 아파트 공사장에서 앉은 채 숨졌다. 한국인들은 낮 1시 퇴근했으나, 일부 이주노동자만 혹서기 단축근무를 적용하지 않아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에는 전남 영암 축산농장에서 일하던 20대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가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장기간 농장주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우리나라 일터에서 이주노동자는 안전하지 않다.

2021년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들이 가진 인종주의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비꼰 만화가 유행했다. 만화에서 한국인은 백인 남성에게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을 멈춰라”라고 울면서 호소하지만, 정작 어두운 피부색의 동남아시아인 남성에게는 냉소적인 미소를 띠며 “노예 인종”이라고 조롱한다. 그렇기에 미국 시사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가 조사한 ‘세계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이란, 벨라루스, 바레인, 미얀마에 이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게차 사건을 보고도, “우리나라에 인종차별이 어디 있냐” “우리나라만큼 외국인에게 잘해주는 나라도 없다. 유럽이나 미국은 더하다”라고 말하는 한국인들은 ‘인종차별 없는 청정국가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최면에서 깨어나야 한다.

현행 고용허가제하에서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 예외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해도 90일 이내 새 일터에 취업하지 못하면 체류 자격을 잃고 강제 출국당한다. 이주노동자와 고용주 간 주종관계를 야기하고 미등록 체류자를 양산시키는, 국제사회도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현재의 고용허가제는 우리가 가진 인종차별적 편견에서 기인한다. 우리보다 피부색이 어둡고, 한국보다 국내총생산(GDP)이 낮은 저개발국에서 온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보장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전체 210여 개국 중 90% 이상의 세계, 195개국이 우리나라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피부색과 경제력에 따라 위계화하고 차별하며, 복잡한 인종 위계화 지도를 그린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은 SPC 삼립 시화공장을 찾아 “일터에서 죽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일터에서 죽지 않을 권리는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 보장받아야 한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