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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중국 강남을 그린 우관중, 흑과 백 사이를 살아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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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중국 강남을 그린 우관중, 흑과 백 사이를 살아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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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서 국내 첫 단독 회고전 '우관중: 흑과 백 사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우관중의 국내 첫 단독 전시 '흑과 백 사이' 전시장 모습. 홍콩예술박물관 제공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우관중의 국내 첫 단독 전시 '흑과 백 사이' 전시장 모습. 홍콩예술박물관 제공


'현대 중국 회화의 대부'로 불리는 우관중(1919∼2010)의 대표작들은 대개 중국 강남(양쯔강 남쪽, 주로 상하이 일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묵화 '두 마리 제비'도 흰 벽과 검은 기와를 얹은 강남의 수로가 주택을 그렸다. 우관중은 이 풍경을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아 수평선과 수직선으로 화면을 분할하는 형태로 구성했다. 전통 수묵화에 서양 형식주의를 접목한 구도다. 나중에 그린 수묵화 '강남 회상'은 아예 세부 묘사를 걷어 내고 몇 개의 점, 선, 면만으로 중국 강남을 표현했다.

25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관중: 흑과 백 사이'는 국내에서 열리는 우관중의 첫 단독 전시다. 작가와 유족이 홍콩예술박물관에 기증한 소장 작품 중 대표 17점을 골라 왔다. 중국의 수묵화와 서양 유화, 중국의 풍경과 서양의 형식주의를 병행하고 더 나아가 하나의 그림으로 조화시켰던 작가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우관중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묵화 '두 마리 제비'. 홍콩예술박물관 제공

우관중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묵화 '두 마리 제비'. 홍콩예술박물관 제공


우관중의 길이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건 아니다. 1950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당시 중국 미술계의 주류였던 소련식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과는 맞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부르주아 미술'로 불리며 배격당했고, 문화대혁명 시기엔 자신의 그림을 폐기해야 했다. 1970년대엔 허베이성 농촌에서 중노동을 하며 3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어려운 시기의 영감을 예술이라는 희망으로 연결했다. 쓴맛이 강한 채소 여주를 그린 '여주 고향'에서 그림 속 여주는 어둠 속 등불처럼 묘사됐다.

그의 고향이기도 한 강남은 그런 의미에서 그의 예술의 뿌리였다. 우관중은 자신의 작품을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회색으로 비유하며 이 색들을 "강남의 색조"라 불렀다. "소련 전문가들은 강남이 유화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강남의 흐린 봄날에 주로 나타나는 은회색 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맞서 그가 자신만의 그림을 지켜낸 기원 또한 강남에 있었던 셈이다.

우관중의 유화 '여주 고향'. 홍콩예술박물관 제공

우관중의 유화 '여주 고향'. 홍콩예술박물관 제공


문화대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중국이 세계와 만나기 시작하면서 우관중의 그림도 재조명됐다. 프랑스 정부는 1991년 그에게 문화예술훈장을 안겼고, 1992년 영국박물관은 살아 있는 중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그의 개인전을 열었다. 중국 정부도 2003년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다. 강남의 수향(水鄕)으로 이름 높은 저우좡을 묘사한 우관중의 유화는 2016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약 350억 원에 낙찰됐다.

우관중은 죽기 직전까지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암 투병 중 병상에서 완성해 생의 마지막 날 홍콩예술박물관에 기증한 '둥지'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작가가 수시로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던 덕에 홍콩예술박물관은 우관중의 작품 45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는 10월 19일까지다.


이번 전시는 홍콩 정부 산하 레저문화서비스부가 주최하는 '홍콩위크 2025' 프로그램 중 하나다. 올해 9월과 10월엔 서울 곳곳에서 여러 공연이 예정돼 있다. 홍콩발레단이 9월 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로미오+줄리엣'을 공연하고,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0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등을 연주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