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EU, 일본, 한국 GDP 규모, 대미 투자 규모, 관세협상 결과 비교/그래픽=이지혜 |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미국과의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면서 한국 정부의 부담이 더 커졌다. 데드라인(8월1일)까지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우리 정부가 미국 행정부과 협상을 타결해야 함은 물론 국내 여론도 설득해야 하는 등 이중 과제를 풀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28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우리 협상단으로부터 한·미 통상 협의 현황을 보고 받고 관계 부처 장관, 주요 참모들과 함께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협상팀은 지난 26~27일 주말도 반납한 채 화상 연결 등을 통해 수시로 논의했다. 이 대통령 역시 협상팀의 회의 내용을 보고받으며 사안을 챙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관가에서는 한국 정부가 미국 측에 수 십조원 규모의 조선업 한미 협력 내용을 담은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협상을 위해 미국에서 스코틀랜드로 급파됐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금 현 상태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러트닉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5~29일 스코틀랜드 방문 일정에 동행했다.
강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은 앞으로도 해외에 체류하면서 미국 상무장관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접촉할 예정"이라며 "이번주 중 구윤철 부총리과 조현 외교부 장관도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베센트 재무장관과 루비오 국무장관과 회담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해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협상에 올인(All-in)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지난 25일에는 러트닉 장관 미국 뉴욕 자택에서도 협의를 이어갔다.
(턴베리 로이터=뉴스1) 류정민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 있는 트럼프 턴베리 골프 클럽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만나 회담 중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 관세와 관련한 질문에 "매우 가까운 미래에 제약 관련 발표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7.2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턴베리 로이터=뉴스1) 류정민 특파원 |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한국 정부가 고심하는 지점은 미국 정부의 노골적인 대규모 투자 요구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은 약 5500억달러(760조원)의 대미투자, EU는 6000억달러의 대미투자에 3년간 7500억달러어치 미국 에너지 구매를 약속하고 모두 상호관세를 15%까지 낮췄지만 일본과 EU의 GDP(국내총생산) 규모는 우리나라의 2~10배에 달한다.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미국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연준) 청사 공사 현장에서 '다른 나라도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출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난 다른 나라도 돈을 내고 관세를 낮추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답했다. 외신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미 투자액으로 4000억달러(약 550조원)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경제 규모 차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에 5500억달러에 상응하는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무리한 것"이라면서도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이 15%까지 관세율을 낮춘 이상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도 경쟁력을 감안해 15% 관세율을 목표로 협상해야 한다는게 우리 협상팀으로서 매우 어려운 싸움을 하는 지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리 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효과를 누렸던 점을 감안하면 12.5%의 관세율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백번 양보해도 15%이상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은 손해라는 지적이다. 일본 자동차는 그동안 2.5%의 관세율을 적용받아왔다.
김 전 원장은 "한미 FTA를 정말 어렵게 체결했는데 미국이 당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제시하는 카드가 매력적이란 점도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전 원장은 "조선이나 반도체 분야에서의 협력은 일본도 못하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 분야 협력이 미국의 제조업 부흥에도 도움을 줄 것이기에 미국에게도 분명 좋은 협상 내용"이라고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한미 양측이 조선, 반도체 등 전략제조 분야에서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끌려가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수 백 조원의 투자를 해서 관세율을 15%까지 낮추는 게 장기적으로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23일(현지시간)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 등 일본의 무역대표단과 협상하고 있다. 트럼프 책상 위에는 일본의 대미 투자 계획 명칭인 '재팬 인베스트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패널이 놓여있는데, '4000억달러'라고 인쇄된 숫자 위에 손글씨로 '5000억달러'라고 쓴 것이 보인다. (댄 스카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 X, 재판매 및 DB금지)?2025.7.2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실제로 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지난 27일 보도에 따르면 미일 관세 협상 타결 관련 설문조사 결과 부정 평가는 40%, 긍정 평가는 28%로 나타났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31%였다. 또 아사히TV에 따르면 미일 관세협의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기재된 문서가 없다는 소식에 일본 야당 측 인사인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위험하다는 인상을 가졌다"며 "합의 문서도 만들지 않아 서로의 해석이 다른 점들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민심 역풍도 새 정부로서는 무시 못할 변수다. 자칫 임기 초 국정운영 동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론격으로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규율하는 내용 등이 담긴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을 추진해왔지만 미국의 우려를 어느정도 반영해 입법 속도를 이미 늦춘 상황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정부와 여당은 상시 어떤 주요 현안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며 "국회도 (온플법이) 통상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참여연대, 소상공인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관세 압박으로 미국이 내정간섭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농산물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것은 더 예민한 문제다. 농민단체는 민주당 지지 기반과도 연관이 있다. 쌀 시장 개방, 30개월령 이상의 소고기 검역 폐지 방안들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여당은 크게 반발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6일 공동성명을 내고 "또다시 농업을 통상협상의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식량과 검역 주권은 일시적인 외교 성과나 수출 확대의 수단으로 거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통상 협상이 진정한 국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출발은 국민의 삶과 식탁을 지키는 데서 비롯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교통상 분야 전문가는 "글로벌 경쟁력이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15%의 관세율을 맞추는 게 우리 기업에 꼭 필요한 일일 것"이라면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5500억달러, 또는 4000억달러가 우리 경제 규모를 감안하면 분명 무리한 측면이 있다. 미국이 장기적으로 국제관계에서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우리 정부도 국내 비판 여론을 감안하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은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비해 냉철하고 차분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며 "대미 관세협상에 있어 가장 큰 기준은 '국익'이다. 정부는 주어진 여건 하에 여러 변수를 고려해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 전국농축산인 결의대회'에서 농민들이 한·미 관세협상 농·축산물 개방 반대를 촉구하고 있다. 쌀·소고기 등 미국산 농축산물 개방 압박이 거세지면서 농민단체들은 농축산물이 협상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5.7.2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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