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지프의 상징 랭글러 400km 시승
타는 것만으로 자신감 솟는 매력적인 차
오승혁의 '팩트 DRIVE'는 지프 랭글러 '41 에디션 루비콘 파워탑 트림을 타고 400km를 시승하며 랭글러와 관련된 궁금증의 답을 얻었다. 사진은 랭글러가 파평산 오프로드를 오르는 모습. /파주 파평산=오승혁, 이환호 기자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차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는 거다.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삶의 일부다." -엔초 페라리(1898~1988)
매년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는 시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팩트’는 귀하다. ‘팩트 DRIVE’는 <더팩트> 오승혁 기자가 직접 타보고, 확인하고, 묻고 답하는 자동차 콘텐츠다. 흔한 시승기의 답습이 아니라 ‘오해와 진실’을 짚는 질문형 포맷으로, 차에 관심 있는 대중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준다. 단순한 스펙 나열은 하지 않는다. 이제 ‘팩트DRIVE’에 시동을 건다. <편집자 주>
[더팩트|파주·고양=오승혁·이환호 기자] "이거 순전히 멋 하나로 타는 차 아니에요?"
'오승혁의 팩트 DRIVE'는 25일 오전부터 28일 아침 출근길까지 사흘간 지프를 상징하는 '랭글러'와 함께 하며 400km를 주행했다. 차량 수령 장소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K리그가 디즈니코리아와의 협업으로 마련한 'K리그X주토피아' 팝업스토어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에 가는 것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이후 지프 차주들의 오프로드 명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파주 파평산의 돌과 모래로 가득한 비포장도로를 달렸고, 북한산 자락의 경사진 길을 경험하며 랭글러의 성능을 맛봤다. 이후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와 스타필드 고양점 등을 방문하며 시내 주행도 충실히 해봤다. 시승한 차량은 지난 2월 출시된 지프 차량의 원조 ‘윌리스 MB(Willys MB)’를 기념하는 헌정 모델 랭글러' 41 에디션(Wrangler’41 Edition)이다.
랭글러의 시승 소식을 알렸을 때, 주변에서 디자인과 지프 브랜드의 역사를 언급하며 디자인을 칭찬하는 여러 반응이 등장했다. 차에 올라타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솟을 정도로 '테토남'(강한 남성성을 지닌 이를 뜻하는 표현)을 상징하는 차로 여겨지는 랭글러인 만큼, 차의 디자인을 호평하는 이가 많았다. 반면, 디자인만 훌륭하고 승차감 등은 나쁜, '디자인에만 올인'한 차라고 평하는 이도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직접 운전대를 잡고,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Q. 지프 랭글러, 이 차 그냥 폼으로 타는 거 아닙니까?
A. "랭글러다. 랭글러다. 랭글러다." 영화 '무뢰한'을 보고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라는 평을 빌려 표현한다. 랭글러는 멋있다. 정말 멋있다. 그런데 멋이 전부인 차는 결코 아니다. 아이들은 꽤 솔직하다. 본인의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호불호와 감정에 대해서는 어른들보다 훨씬 솔직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재학 중인 자녀에게 넓은 주차장에서 "여기있는 차 중에 우리가 오늘 탈 차가 있어. 제일 멋있는 차를 골라봐"라고 했다.
자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랭글러 앞에 섰고 "이거 맞죠?"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랭글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80년 전인 1945년에 종전된 제2차 세계대전을 봐야 한다. 당시 연합군에 비해 차량 기술에서 우위를 보였던 독일군이 4륜 자동차를 전투에 투입하자 미국은 미군에게 필요한 4륜 구동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의 국가적인 투자 덕에 소형 트럭들이 개발됐고 이 중 '윌리스 MB'가 1941년 미군에 의해 단일 모델로 선정됐다. 이번에 시승한 랭글러에 '41 에디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84년의 세월 동안 랭글러는 특유의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사용자의 편의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를 거듭했다.
실제로 차를 타고 탑승해보니 군용 차량으로 개발된 점을 강조하는 듯 높은 차체와 상대적으로 작은 앞유리, 사이드 미러 등이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차체에 비해 작은 앞유리로 인해 걱정했지만, 버스나 트럭 등을 제외하면 도로의 거의 모든 차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차체 덕에 시야가 생각보다 넓어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창문 역시 전쟁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차량의 충돌이 발생했을 때 작은 창문은 운전자와 탑승자의 부상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또 몇 년 전 강원도의 한 행사장에서 잠시 타봤던 이전 랭글러에 비해 강화된 편의 기능이 편한 주행을 도왔다. 역대 랭글러 중 가장 큰 12.3인치 터치스크린을 탑재했고, 랭글러 최초로 운전석과 조수석에 전동 시트를 지원했다. 직접 당겨서 의자를 움직이던 과거와는 달랐다. 군대도 '첨단'을 외치며 디지털화하는 이 시대에 랭글러에도 어느 정도의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이다.
가격은 랭글러 스포츠S 7420만원, 루비콘 2도어 8070만원, 루비콘 4도어 하드탑 8490만원, 파워탑 8740만원이다. 지프차 특유의 탑을 열고 닫는 기능에 따라 명칭과 가격이 다르다. 부드러운 천 소재로 된 탑을 적용해 열고 닫을 수 있으면 '소프트탑', 딱딱한 스틸로 만들어진 탑을 올리면 '하프탑'이라는 표현이 주로 통용됐지만, 최근 지프는 전자동으로 열고 닫히는 탑은 파워탑, 탈착이 불가능한 딱딱한 형태는 하드탑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시승한 트림은 파워탑으로 8740만원이다. 주행 중 기능 테스트를 위해 몇 차례 팁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달렸다. 폭염으로 인해 더운 바람이 들어와 지금의 날씨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기능이었다. 날씨가 선선할 때 열고 달리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Q. 승차감은 포기해야 한다는데, 맞나요?
A. 승차감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허리 통증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상 차종에 관계 없이 400km를 운전하면 몸이 피곤한 것은 다 같다. 하지만, 특별히 랭글러라고 해서 몸이 더 아프거나 쑤시지는 않았다.
랭글러에는 일반 차량에 흔히 쓰이는 31인치 타이어에 비해 큰 33인치 타이어가 적용된다. 큰 타이어가 주는 쿠션감 덕분에 장시간 주행에도 승차감이 걱정한 것처럼 나쁘진 않았다. 하차감은 압도적이다. 차에 오르내릴 때 여러 남성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랭글러가 힘을 발휘하고 진짜 매력을 보여주는 구간은 비포장 산길이다. 파평산에서 마주한 진흙길과 자갈밭, 웅덩이 코스에서도 차는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오히려 운전자보다 차가 더 자신 있어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파평산 산길을 오르면서 루비콘 투림에만 달린 오프로드 플러스 버튼을 눌렀다. 차량이 달리고 있는 지형을 자동 분석해 네 개의 바퀴가 각기 다른 하중을 적절히 받게 만드는 이 버튼을 누르면 이전에 해본 적 없는 오프로드 경험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연비는 리터당 6~7km를 가는 수준이다.
Q. 그럼 결국 오프로드 할 거 아니면 필요 없는 차 아닌가요?
A. ‘심플하고 조용한 삶’을 원하는 이에게 랭글러는 결코 사서는 안 되는 차다. 하지만, 랭글러와 함께 한 며칠 동안 이 차와 같이 달리기 위해 더 활동적으로 더 많은 곳을 가고 도전하게 됐다.
최근 전국적으로 이어진 폭우 탓에 도강의 명소로 불리는 경기도 가평의 한 분교를 가는 것은 포기했지만, 꽤 깊은 웅덩이를 지나갈 때도 80cm 가량의 물은 건널 수 있는 랭글러를 믿고 자신 있게 달렸다.
일반 차량을 타고 있었다면, 그곳을 피해 지나갔을 것이다. 만일 지나갔다면 차가 멈췄을 수도 있다.
랭글러는 단순한 SUV가 아니다. 평탄한 삶을 지향하는 운전자보다는, 험한 길도 즐겁게 넘나들고 싶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차다. 늘 심장이 뛰고, 가슴 속에 한 마리 맹수를 키우고 있거나 그런 맹수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차다.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랭글러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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