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문민 국방장관’ 안규백, 불법 계엄 동원 3공수 제일 먼저 찾은 까닭은

한겨레
원문보기

‘문민 국방장관’ 안규백, 불법 계엄 동원 3공수 제일 먼저 찾은 까닭은

서울맑음 / -3.9 °
안규백 국방부장관이 28일 취임 후 첫 현장 점검으로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여단을 방문해 장병들과 대화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안규백 국방부장관이 28일 취임 후 첫 현장 점검으로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여단을 방문해 장병들과 대화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안규백 국방부장관이 28일 취임 후 첫 현장 점검으로 특수전사령부 제3공수여단을 방문했다. 안 장관은 이날 3공수여단에서 불법 비상계엄에 동원된 장병들을 위로하고 문민통제 아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국민의 군대’ 재건 의지를 강조했다고 국방부가 전했다.



통상 국방장관이나 합동참모의장 등이 취임하면 전방의 경계작전부대를 첫 현장 점검차 방문해 철저한 대비태세를 당부하곤 했다. 이와 달리 안 장관은 전후방의 많은 부대 중에서 경기도 이천에 있는 제3공수여단을 방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방부는 “불법 비상계엄으로 상처 입은 장병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군심을 결집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안 장관의 의지에 따라 3공수여단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의 3공수여단 방문은 군심 결집뿐만 아니라 군의 정치적 중립과 문민통제 확립을 강조하는 성격도 있다. 제3공수여단은 지난해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들어갔다. 3공수는 1979년 12월12일에는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여 특전사령부를 습격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했고, 이를 막던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전사했다.



3공수는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및 민간인 학살, 지난해 12·3 내란사태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굽이마다 등장했던 부대다. 특전사 예하 여단 가운데 수도권에 오래 주둔한 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은 내란과 반란, 민주화운동 진압에 두루 동원됐는데, 1공수여단은 부마민주항쟁 진압, 12·12군사반란, 12·3내란에 동원됐고 5·18민주화운동 진압에는 동원되지 않았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64년만의 문민 국방장관인 안 장관이 반란과 내란, 민주화운동 진압에 빠짐없이 엮인 3공수를 첫 현장 방문지로 택한 것은 문민통제를 강조한 상징적 행보로 읽힌다. 이날 3공수에서 안 장관은 “국방부장관으로서 우리 군이 정치적 중립을 엄정히 준수한 가운데,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문민통제를 확립하여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국민의 군대’를 재건할 것”을 약속했다.



안 장관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부대안정화 조치에 대해 보고받은 이후, 비상계엄 당일 동원된 3공수여단과 707특임단 장병들을 직접 만나 대화했다. 그는 “그동안 오직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충성을 다해 온 특전사 장병들의 자부심과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다”며 “가장 먼저 여러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여러분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특전사 장병들의 어렵고 힘든 점들을 경청하고 장병의 실추된 명예와 자부심 회복을 약속했다고 국방부가 전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