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26일 영양실조로 사망한 5개월 된 영아 자인나브 아부 할리브를 한 남성이 안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가자에서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시늉뿐인 구호 조처만 취하고 있다.
26일 가자에서는 5명이 기아로 사망하는 등 적어도 71명이 죽었다고 ‘알자지라’가 가자 보건부 등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날 사망자 중에는 식량을 구하려다 총에 맞은 주민 42명이 포함됐다. 굶주림으로 인한 사망자는 최근 들어서 127명에 달한다고 방송은 전했다. 기아로 인한 사망자 중 85명은 어린이이다.
유엔식량계획(WFP)은 25일 가자 주민의 3분의 1이 며칠 동안 음식을 못먹고 있다고 밝혔다. 가자에서는 매달 인도적 필요를 충족하려면 6만2천톤의 식량이 필요하고, 이는 매일 120대 트럭 분량이라고 유엔식량계획은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주 가자로 들어간 식량 트럭은 600대로, 하루에 약 85대 꼴이라고 이스라엘군은 26일 인정했다. 이마저도 배급소 근처에서 계속되는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3월 들어서 가자로 가는 모든 생필품 공급을 차단했다가 미국과 함께 가자인도주의재단(GHF·재단)를 만들어 5월 말부터 제한적 공급을 재개했다. 기존의 국제 구호기관의 가자 접근은 계속 차단했다. 재단이 가자 남부에 4곳에 식량 배급소를 설립하고 활동을 시작한 뒤 식량을 받으려고 몰려드는 주민에게 이스라엘군이 총격을 가해 지금까지 1100여명이 사망했다. 가자의 기근 사태는 더욱 악화했다.
가자 주민들은 기아와 함께 깨끗한 식수 부족으로 인한 탈수로도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알자지라와 비비시 등은 전했다. 알자지라는 이날 5개월 된 아기 자인나부가 영양실조로 인해 사망한 최근 주민 중 하나라고 전했다. 자인나부의 어머니 이스라아 아부 할리브는 딸이 “많은 질병으로 고통받다가 죽었다”며 “영양실조, 분유 부족, 봉쇄 등이 모든 것이 우리 주민들에게는 고통이다”고 말했다.
가자에서 기아 위기가 고조되고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이스라엘은 27일 구호품을 공중 투하하는 한편 인도적 회랑의 개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 구호기관들은 이스라엘이 가자 기아 책임에 대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조처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은 27일 성명을 내어 “최근” 가자지구에 인도적 구호품을 투하를 했다며 구호품은 “밀가루, 설탕, 통조림 식품이 포함된 7개 상자”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가자로의 구호 전달을 감독하는 ‘정부점령지활동조정청’(Cogat)의 주도로 국제 기구들의 협조로 수행됐다”고 주장했다.
국제 구호기관들은 이스라엘군의 ‘공중 투하’ 방식이 주민에게 위험을 가할 수 있으며, 투하된 구호 식량조차 극소량이라고 지적했다.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의 필립 라자리니 대표는 공중투하는 “비싸고, 비효율적이고, 심지어는 굶주린 민간인들을 죽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자 북부 알라시드 인근 난민촌에서는 난민들의 텐트에 직접 떨어진 구호 상자로 11명이 부상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21일 가자로의 유엔 구호대의 진입을 위해 인도적 회랑 개방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 일부 지역에서 구호품 전달을 촉진하기 위해 “인도적인 (전투) 중단”을 허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주민에 대한 식량 배급 책임은 “유엔 및 국제 구호 기구들에 있다”며 그들이 “구호품들이 하마스에 돌아가지 않도록 보장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5월 이후 가자에서 국제 구호기구들의 활동을 차단해 왔던 이스라엘의 입장 변화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유엔 및 국제 구호기구들의 활동을 가자에서 허락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유엔팔레스타인난민사업기구의 라자리니 대표는 이 기구가 요르단과 이집트에 “6천 대 트럭 분량의 구호품”을 갖고 있고, 가자에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스라엘에게 “봉쇄를 풀고, 문을 열어서 안전한 이동을 보장해, 굶주림에 지친 주민에 대한 접근”을 허락하라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유엔 등의 구호품이 하마스에 의해 약탈당하고 있다며, 가자에서 가자인도주의재단만의 구호 활동을 허가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군 관리들은 하마스가 유엔의 구호품을 훔친다는 증거는 없다고 보고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관리들은 뉴욕타임스에 가자에서 유엔의 구호 활동은 다른 단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신뢰할만하고 하마스의 간섭에 덜 취약하다며 하마스가 유엔 구호품을 조직적으로 훔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유엔이 가자 내에서 공급망을 잘 운용해, 배급을 직접 관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내부 분석도 하마스가 미국이 자금을 댄 인도적 공급품을 조직적으로 훔쳤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로이터가 25일 보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