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리정. 더블랙레이블 제공 |
초등학생 이이정은 친구의 권유로 장기자랑 무대에 올랐다.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를 췄다. 인트로에서 느꼈다. “이건 내 직업이겠다.” 이이정은 확신했다. “나는 이거 하려고 태어났다.”
엠넷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를 통해 이름을 알린 뒤, 최근 종영한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활약한 안무가 리정(본명 이이정)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때부터 춤을 안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는 그는, 블랙핑크·트와이스 등의 안무를 만드는 춤꾼으로 자랐다.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스우파>는 리정에게 남다른 의미다. 그는 “원래 춤은 우리끼리 공유하고 소통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많은 사람들이 춤을 저만큼 사랑하고 있다”며 “(방송 이후) 이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졌고 문화가 발전했다”고 말했다. 2021년 방송된 <스우파>는 총 8개 팀이 우승을 놓고 겨루는 여성 댄스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예능 작품상을 받는 등 널리 사랑받았다.
스우파 시즌3 격인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는 <스우파> 각 팀의 리더였던 8명이 한 팀을 이뤄 국가 대항전을 치렀다. 팀의 이름은 범접(BUMSUP). 효진초이가 지은 이름이다. 영어와 한국어 발음 모두 편해 글로벌 춤 대결에 걸맞았다. ‘虎’(호랑이 범), ‘범접할 수 없는 존재’, ‘엉덩이(bum)를 들썩거리게 하다’ 등 다채로운 의미도 지녔다.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 출연 제의가 왔을 때, 주변에선 “잘해야 본전” “잃을 게 많은 판”이라며 말렸다. 하지만 리정은 고민하지 않았다.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는 “스우파 출연이 누군가한테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일 수 있지 않느냐”며 “‘언니들이랑 한다고? 너무 좋은데요!’ 생각했다”고 했다.
범접은 에이지 스쿼드(호주), 모티브(미국), 로얄 패밀리(뉴질랜드), 오사카 오죠 갱(일본 오사카), 알에이치도쿄(일본 도쿄)와 실력을 겨뤘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부담감도 느꼈지만, 이 역시 원동력으로 삼았다. 특히 에이지 스쿼드의 리더로 출연한 카에아는 리정에게 ‘연예인 같은’ 존재다. 리정은 “카에아가 ‘넌 진짜 스타야’라고 했을 때 너무 좋았다”고 했다.
범접은 메가 크루 미션 영상이 공개 3일 만에 유튜브에서 1000만뷰를 돌파하는 등 화제를 모았으나, 세미 파이널에서 탈락했다. 패배감보단 아쉬움에 쓰라렸다. 라이브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던 그로서는 생방송으로 열리는 결승전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게 속상했다. 그는 “매일 연습실에서 점심·저녁을 먹으면서 정말 미친 사람들처럼 춤만 추는 시기가 끝났구나 싶었다”고 했다.
리정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OST <하우 잇츠 던>과 <소다 팝> 안무 제작에도 참여했다. 작업 기간은 3년이었다. 제작진은 첫 화상 미팅에서 “저희는 이런 걸 기획하고 있다. 그래서 리정씨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리정의 심장이 요동쳤다.
리정은 <케데헌>에 등장하는 걸그룹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보이즈를 실재하는 아티스트로 생각하고 안무를 짰다. 두 그룹의 안무 실력을 두고는 “너무 잘한다. 지치지도 않고”라며 웃었다. <케데헌> 속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실제 리정의 모습을 본 떴다. 제작진은 리정의 안무 영상만 찍은 게 아니라 그의 일상 생활도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인간의 동작을 디지털 정보로 기록하는 것)했다.
리정은 ‘춤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민 않고 “없다”고 했다. 그에게 춤은 삶이고, 자부심이고, 구원이고,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원더걸스 키즈’로 자란 그에게 ‘리정 키즈’를 위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꼭 좋아하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내 세상’은 바꿀 수 있거든요.”
안무가 리정. 더블랙레이블 제공 |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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