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국민·당에만 사과한 강선우에
"우린 을이라서냐" 보좌진 부글부글
"강 떠나도 처우 개선 논의 이어져야"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직을 내려놨습니다.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국회에 강 의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사흘 안에 보내달라고 요청하며 임명 강행 의지를 내보였지만, 악화일로를 걷는 여론에 결국 스스로 멈춰서기를 택했습니다.
강 의원은 페이스북에 남긴 8줄짜리 사퇴의 변을 통해 '죄송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로 인해 마음 아프셨을 국민"께, "저를 믿어주시고 기회를 주셨던 이 대통령님"께, 그리고 "함께 비를 맞아줬던 민주당"을 향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과 대상에 보좌진은 없었습니다. 보좌진들이 근무하는 국회 의원회관에선 "그 누구보다도 마음 아팠던 건 보좌진인데 우리에겐 사과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기는 건가"(민주당 소속 의원실 근무 11년 차 보좌관), "본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자기 기준에 갑인 이들에게만 사과한 것"(국민의힘 소속 의원실 근무 4년 차 선임비서관)이란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른 국민의힘 소속 선임비서관은 "보좌진을 국민, 대통령보다 아래로 봤으니 여태 버텼고 사과도 없이 떠나지 않았겠나. 이러니 보좌진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우린 을이라서냐" 보좌진 부글부글
"강 떠나도 처우 개선 논의 이어져야"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지지난 23일 자진 사퇴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
'보좌진 갑질'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3일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직을 내려놨습니다.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국회에 강 의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사흘 안에 보내달라고 요청하며 임명 강행 의지를 내보였지만, 악화일로를 걷는 여론에 결국 스스로 멈춰서기를 택했습니다.
강 의원은 페이스북에 남긴 8줄짜리 사퇴의 변을 통해 '죄송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로 인해 마음 아프셨을 국민"께, "저를 믿어주시고 기회를 주셨던 이 대통령님"께, 그리고 "함께 비를 맞아줬던 민주당"을 향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과 대상에 보좌진은 없었습니다. 보좌진들이 근무하는 국회 의원회관에선 "그 누구보다도 마음 아팠던 건 보좌진인데 우리에겐 사과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기는 건가"(민주당 소속 의원실 근무 11년 차 보좌관), "본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자기 기준에 갑인 이들에게만 사과한 것"(국민의힘 소속 의원실 근무 4년 차 선임비서관)이란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다른 국민의힘 소속 선임비서관은 "보좌진을 국민, 대통령보다 아래로 봤으니 여태 버텼고 사과도 없이 떠나지 않았겠나. 이러니 보좌진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끝내 보좌진에 대한 사과는 외면한 강 의원에 대해 앞으로 다시 함께 일을 해야 할 민주당 보좌진협의회는 특별한 비판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동안 많이 힘들고 아프셨을 보좌진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대신' 사과를 표하며 "보좌진 인권과 처우 개선은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습니다. 민보협은 지난 15일 김병기 민주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만나 보좌진 처우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오른 처우 개선 논의가 강 의원의 장관 후보직 사퇴와 함께 가라앉지 않아야 한다는 게 보좌진들의 의지이자, 바람인 겁니다.
보좌진 채용도, 해임도 '의원님 재량'
강 의원 사례가 유독 도드라졌을 뿐 보좌진에 대한 의원들의 갑질 문제는 사실 국회에 만연한 문제입니다. 당을 오가며 20년 가까이 근무하고 있는 한 행정 업무 전문 비서관은 "의원의 사적 심부름을 안 해봤다는 보좌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이게 가능한 데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고 보좌진들은 입을 모읍니다. 갑질을 거부하기 어려운 국회 특유의 문화와 특수한 고용 구조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원 1인당 최대 9명까지 둘 수 있는 보좌직원은 공식적으론 국회 사무처 소속 공무원입니다. 처우 역시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국회 사무처 보좌직원 인사관리지침' 등을 따르도록 보장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고, 급수에 맞는 급여와 수당을 받으며,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 공무원 연금을 받는 등 일반적인 공무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의원 1인이 임용권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보좌진은 의원이 자율적으로 채용하고 징계, 해임할 수 있습니다. 복무평가나 인사고과도 없습니다. 의원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고용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하루아침에 자르는' 것도 가능한 구조입니다. 잘릴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의원 명령에 불복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의원과 좋지 않게 헤어진 경우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도 보좌진의 운신의 폭을 좁힙니다. 의원 보좌진은 대부분이 국회 경내 의원회관에서 모여 근무하다보니 평가가 순식간에 퍼지는데요. 보좌직원이 특정 의원실을 떠날 때는 '경력'을 살려 다른 의원실로 이직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 의원에게 항명했다더라'와 같은 나쁜 소문이 퍼져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구직이 어려워집니다.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불합리한 관행이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도 개선은 요원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큽니다. 이번처럼 강한 요구가 없는 한, 개선의 키를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자발적으로' 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낮기 때문입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23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에 대한 브리핑을 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사적 업무 기준 마련부터" vs "제도 개선"
그러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우선 불안정한 고용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의원 재량만으로 직을 박탈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거죠. 민주당 초선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보좌직원 해임 30일 전 사무처 통보를 의무화하는 식으로 최소한 당장 자르는 것은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며 "만약 의원이 면직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에는 (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급여를 지급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6년 경력의 한 비서관은 "일반 기업처럼 쌍방향 평가제를 도입해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 이 경우에는 '상사'인 의원에 대한 보좌진의 평가를 의원이 알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법 개정 등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사적 업무에 대한 기준 등을 담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유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어떤 게 사적 지시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의원마다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국회나 당 차원에서 명확한 기준과 방침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같은 의견을 두고는 "단순 권고안 마련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보좌진들에게선 나옵니다. 민보협 관계자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실태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 계획"이라며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습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