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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조국 사태 될 뻔했다”…강선우 사태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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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조국 사태 될 뻔했다”…강선우 사태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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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 야권에 반격의 명분 제공했을 수도
7월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강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권도현 기자

7월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강 후보자가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갑질’ 논란을 빚었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 30일 만인 7월 23일 자진사퇴했다. 강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보좌진에게 사적 업무를 지시한 ‘갑질’ 정황을 감싸려는 여당 의원들의 대응은 국민 여론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민주당에 ‘권력형 갑질’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고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보다 조직 내부의 유대나 이해관계를 중시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특히 요구되는 여성가족부 장관직에 대해 이재명 정부가 보여준 인식과 인선 과정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는 여가부 폐지를 추진했던 윤석열 정부와 정책 방향은 달라도 결과적으로 부처의 상징성과 기능에 대한 인식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로도 이어졌다.

청문회 과정에서 강 전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자신이 사는 집 화장실의 비데 수리, 음식물쓰레기 처리 등 직무 범위를 벗어난 사적 지시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강 전 후보자는 이를 부인했으나 이후 보좌진과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의혹은 ‘거짓 해명 논란’으로 확대됐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 역대 회장단은 강 전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국민 눈높이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여권의 ‘내로남불 민낯’ 보여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전국 유권자 2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2%포인트)에서 강 전 후보자에 대해 ‘부적절하다’라는 응답이 60.2%로 집계되는 등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7월 22일 국회에 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하며 임명 절차를 강행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의혹이 소명됐다며 강 전 후보자를 옹호했다. 당대표 후보인 정청래 의원은 “강선우는 따뜻한 엄마였고 훌륭한 국회의원이었다”라며 “곧 장관님, 힘내시라”라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일반적인 직장 내 갑질과 보좌진과 의원의 관계에서 갑질의 경우 성격이 다르다”라며 “의정 활동이라는 게 의원 개인의 일이냐, 아니면 공적인 일이냐 이걸 나누는 게 굉장히 애매하다”라고 했다. 그는 “자발적인 마음을 갖고 (사적인 일을) 하는 보좌진도 있다”라며 강 의원을 적극 엄호했다.

전략컨설팅 그룹 섀도우캐비닛 김경미 대표는 이러한 여당의 엄호에 대해 진영논리에 갇힌 ‘내로남불’이라며 비판했다. 김 대표는 “국회는 거버넌스가 구조적으로 취약한 공간이며 교회 등 폐쇄적 조직의 위계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비슷하게 나타난다”라며 “일반적인 직장에서 명확하게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위력의 문제들이 국회에서는 회색지대처럼 존재한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 역대 회장단까지 성명을 발표한 상황에서도 정작 책임 있는 국회의원들이 먼저 나서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선우 의원이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이 그 자리에 임명됐고, 그런 논란이 있었다면 민주당은 어땠을까”라며 “문재인 정부가 조국 전 장관 논란 등으로 임기 내내 ‘내로남불’ 비판에 직면했던 전례처럼 강 전 후보자 논란은 민주당이 다시 그 프레임에 갇히게 만들 수 있는 흐름이었다”라고 짚었다.

강 전 후보자 임명을 강행했다면 불법 계엄과 대선 패배 이후 지리멸렬 상태에 놓인 야권에 반격의 명분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조국 전 장관 사태를 언급하며 “당시에도 논란 초기에는 지지율 하락 폭이 크지 않았지만, 야권이 이를 계기로 정치적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강선우 전 후보자 사례도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었으며 향후 야권 입장에선 정당성과 명분 회복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보좌진 인권 문제에서 시작된 논란은 정부가 여성가족부라는 부처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를 가늠케 하는 문제로도 확장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 했던 전 정부와 달리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하는 정책 조정 기구로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논란의 인물을 여가부 장관으로 밀어붙이려 한 과정에서 보여준 여권의 민낯은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와 성평등 및 여가부 이슈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윤 정부와 인식 수준 다르지 않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뒤늦게나마 자진사퇴로 정리를 한 것은 다행이다”라면서도 “성평등 정책이야말로 전 정부와의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었지만 강 후보자 논란이 장기화하며 그 차별성이 무엇인지 되묻게 되는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다. 이선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성평등’보다는 ‘친명’에 방점을 찍은 인사였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청문회 전후로 이어진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대통령이 전면에서 엄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평등이나 차별 해소보다 자신의 뜻을 살릴 수 있는 친명을 임명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가족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마지막 보루와 같은 자리인데, 자질이나 직무 적합성은 물론 정책 철학조차 동의하기 어려운 인물의 임명하려 했던 것은 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광장 정치 앞에 섰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여가부 장관 논란은 의회 내 권력 관계와 보좌진 인권 문제 그리고 여성가족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 필요성을 환기했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는 강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 직후 공식 입장을 내고 “보좌진 인권과 처우 개선은 이제 시작”이라고 밝혔다. 한 보좌관은 “민보협 역대회장단이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까지 냈던 상황에서 임명을 강행했다면 보좌진들은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며 “의회 내 갑질 문제는 구조적으로 누적돼 있었고, 이번 사안을 계기로 실태 조사와 갑질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김경미 대표는 “이제 갑질이 낙마로 이어지는 쟁점이 됐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관리해야 할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란희 대표는 “여가부는 성평등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로서 정부 전체의 성평등 기조를 이끌어야 한다는 역할이 기대된다. 권력 관계나 기존 질서를 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고, 정부 내에서도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부처는 대통령 등 권력을 향해 필요한 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맡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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